[상상] 개
아가씨는 개를 좋아한다. 특히 윤기있고 멋진 몸매를 가진 사냥개를 좋아한다. 외출할 때면 꼭 그 녀석들을 데리고 나간다. 하지만 아가씨가 사냥개만 좋아하는 것은 아니다. 아가씨 옆에는 지적인 멋을 풍기는 녀석도 있다. 아가씨가 의자에 기대 책을 읽을 때면 이녀석은 아가씨 품으로 고개를 집어 넣고 함께 책을 응시한다. 마치 자신도 책의 한 귀절을 읽고 있다는 듯 고개를 끄덕인다. 개는 글을 읽지 못하고 사람의 말을 할 줄도 모른다. 아주 가끔 사람의 말을 알아 듣기도 하고 말도 하는 개도 있다는 소문이 들리지만 그런 경우는 거의 드물다. 설령 그런 개가 있다 하더라도 그녀석은 함부로 사람의 말을 하지 않는다. 큰 사단이 날 것을 알기 때문이다. 사람들이 개가 사람 말을 할 줄 모른다고 알고 있는게 당연하다.
확실히 아가씨는 개들을 좋아한다. 그렇지만 그건 아가씨의 취향일 뿐이다. 개들은 절대로 아가씨의 취향을 오해하면 안된다. 전에 그런 녀석이 있었다. 개답지 않고 나름 사람답게 아가씨의 흥미를 끄는 녀석이었다. 사냥개같은 날렵함과 멋진 몸을 가졌고 아가씨가 차를 마시며 책을 읽을 때면 그 옆에 앉아서 마치 자신도 책을 읽는 듯 조용하게 같은 곳을 응시했다. 아가씨는 특별히 그녀석을 더 좋아했다. 아가씨는 “네가 정말 사람이라면 정말 멋진 남자일텐데 말야. 너같은 사람이 있다면 좋겠어. 네가 말을 할 줄 알면 좋겠다”.
그 말을 듣는 순간 그 녀석은 그만 아가씨가 자기를 진심으로 좋아한다고 오해를 하고 말았다. 그리고 주제넘게 아가씨에게 사람의 말을 건냈다. 마치 자기가 아가씨의 애인이나 된 것 마냥 아가씨의 깊은 관심을 받으려 한것이다. 아가씨는 사람의 말을 하며 자기에게 진심을 보이는 개를 보며 놀라워하며 기특해 했다. 하지만 그 후로 아가씨 집에서는 누구도 그녀석의 모습을 보지 못했다.
그 후로 아가씨 집안의 개들은 자신들이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가에 대한 깊은 교훈을 깨달았다. 아가씨의 취향 안에 머물러 있을 때 그나마 아가씨의 손길과 향기를 맡을 수 있다. 그것이 개로써 누릴 수 있는 최고의 행복이다. 말을 할 줄 안다고 해서 함부로 말을 섞지 말아야 하며 자기 주제를 넘어서 쓸데없이 관심을 갖지 말아야 한다. 모름지기 조신한 개만이 아가씨 품에 오래 있을 수 있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