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 마음의 화단
올해는 작년과는 여러모로 다르다. 작년까지의 내 모습이 "적극적 방관"이었다면 올해는 "수동적인 참여"라고 말하고 싶다. "적극적 방관"이라 함은 사람이나 일에대해 아무 생각없이 모른척하기 보다는 속으로 고민하고 면멸히 관찰하면서 방치한다는 의미고, "수동적 참여"라 함은 일단 주어진 일에 대해서는 적극적으로 생각하고 일을 하고있다는 의미다.
마당 한켠에 있는 작은 화단이 좋은 예가 되겠다. 작년까지는 누가 뿌려놓은 씨앗들과 자라나는 꽃들을 보곤 했다. 잡초도 다른 사람이 뽑아주면 '뽑아주나'하고 바라보고 누가 건드리지 않으면 '그냥 그런가보다'하고 나도 굳이 관여하지 않았다. 상태가 너무 안좋아지면 그제서야 소매를 걷어 올리고 잡초를 뽑았다. 덕분에 사람키만큼 자라난 코스모스와 허벅지 높이까지 자라난 잡초덕분에 화단은 폭탄을 맞은 듯 피폐하게 변해버렸다.
올해는 그렇지 않다. 작년보다는 좀 더 나은 화단을 가꿔보리라 마음 먹었다. 누가 심어 놓은 꽃들은 더 잘 자라도록 관심을 기울였다. 매일 아침 저녁으로 물을 주고 일주일에 한번씩은 잡초를 뽑아주고 화단을 정리했다. 아내는 어디서 사왔는지 꽃씨 몇봉지를 잡초가 무성한 언덕에 뿌렸다. 언젠간 잡초 사이를 헤치고 꽃들이 자라나지 않겠느냐고 말하면서 말이다.
그렇게 두달이 지났다. 그리고 오늘 이쁘게 꽃들이 자리잡은 화단을 보면서 내심 마음이 뿌듯했다. 이름 모를 꽃과 백일홍이 이쁘게 피어났다. 잡초뿐이던 언덕에는 코스모스며 백일홍과 여러 꽃들이 자라나고 있다. 뿌렸던 씨앗과 뿌려진 땀들이 결실을 맺었다. 이 세상에 내 뜻대로 되는 것이 몇이나 되겠는가. 노력하고 가꾼만큼 열매를 거두는 일들이 그리 많지 않다. 사람을 대하는 것은 더욱 그러하다. 100을 쏟아부어도 당장은 10도 거두기가 힘든 것이 사람농사다. 뿌린대로 거둔다는 말이 있는데 사람에 대해서는 이 말이 꼭그렇지만은 않다. 좋고 아름다운 것을 뿌려도 나쁜 것으로 돌려받는 경우도 있다. 다른이가 내게, 그리고 내가 다른 이에게 그렇게 했다. 그런데 이런 일들이 반복되면 사람이 게을러지고 우울해진다. 사람을 믿을 수가 없고 사람에대한 신뢰감을 상실한다. 무엇보다도 내 자신에게 기대를 갖지 않는다. 내 자신과 사람에 대한 기대감을 갖지 않는 사람이 어떻게 사랑과 열정으로 일을 할 수 있겠는가.
하지만 화단은 한달만 가꿔줘도 그 모습이 달라진다. 내 맘대로 할 수 있고 한 만큼 열매를 돌려준다. 화단은 내게 기대감을 준다. 나도 성실히 열심히 할 수 있다고 격려를 한다. 뿌린대로 모든 것이 열매를 맺는 않지만 뿌리지 않으면 열매를 거둘 수 없고, 다른 이의 열매를 탐하고 미워하는 못된 심보만 늘어간다는 것을 가르쳐 준다. 나는 화단을 가꾸었지만 화단은 오히려 나를 가꿔줬다. 나는 화단의 잡초를 뽑아줬는데 화단은 오히려 내 마음의 잡초를 제거해줬다. 화단이 바뀌면서 내 자신도 바뀌었다.
어느덧 꽃이 핀 작은 화단을 바라보자면 내 마음을 보는듯 흐믓해진다. 척박한 땅이고 아직 이곳 저곳 잡초도 있지만, 어느새 꽃들이 자라고 나비와 벌이 날아드는 생명의 땅이 되었다. 내 마음도 아직 갈아야 할 것도 많고 물주고 제거해야할 잡초도 많다. 그렇지만 이제는 나를 바라보는 내 눈이 변했다. 적어도 내가 생각하기에 나는 조금은 변했다. 아직 부족하지만 내 마음도 내 삶도 저 작은 곳같이 그렇게 변하고 풍성해질 것을 기대하고 있다.
잡초를 뽑아주고 나니 어느새 날아온 나비 두마리가 백일홍 위에서 꿀을 빨고 있다. 보기만 해도 흐뭇하다. 언젠가는 내 맘도 삶도 나비 한두마리 여유롭게 앉았다 갈 그런 곳이 되기를 기대하고 기도하며, 내 마음의 밭을 갈아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