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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판단을 미루기 (피츠제럴드의 위대한 개츠비를 읽고)

<<위대한 개츠비>>의 첫페이지에 몇개의 문장이 지나가면 닉이 다음과 같이 자신의 인생을 회고한다.  

 "그 후로 나는 모든 것에 대해 판단을 미루는 버릇이 생겼는데, 그 때문에 유별난 성격의 소유자들이 툭하면 나에게 접근해 왔고 따분하기로는 둘째가라면 서러울 인간들로부터 적잖이 시달림을 받았다". 

  판단을 미루면 아니 판단을 말이나 행동으로 표현하지 않을 때 오는 유익이 있다. 판단을 감추면 판단받기를 원하는 이들이 은근히 판단받기를 원하며 주변에 몰려든다. 사람들은 자기보다 더 높은 권력과 가치 앞에 인정받기 원하며, 알 수 없는 미지의 애매모호함에 자기를 보여주고 평가받기를 원하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판단을 나타내지 않는 것의 유익은 사람들의 관심과 함께 그 사람들을 내 주위 어느 넓이 만큼의 공터에 붙잡아 둘 수 있다는 것이다. 

  아! 그런 점에서 나는 얼마나 민감한 것들에 대해서 나의 판단을 솔직하게 표현했단 말인가. 나의 순진한 어리석음때문에 얻은 상처들에 내 스스로 위로를 보낸다.  

  그러나 반대로 그렇게 판단을 감추고 미뤄서 얻은 관심과 사람들이란 것은 큰 파도에 일순간 사라질 바닷가의 모래성과 같은 것이다. 판단을 내리고 표현함으로 잃어버린 것들을 공허하다고 말한다면, 표현하지 않음으로 얻은 것들은 무게감이 없다고 말하고 싶다. 무게감 없는 존재들은 어느순간 나도모르게 드러난 판단과 표현으로 저 멀리 사라질 허상과 같다. 그렇기에 위대한 개츠비의 첫 페이지의 말과 같이 판단을 미룸으로 사람들을 얻은 이가 있다면 그는 끝까지 그 판단을 유보해야만 한다. 

  그럼에도 굳이 판단을 내려야 하고 말하고 싶은 것이 있다면 자신의 삶에 얻어진 모든 것이 부서질 것이라는 생각의 무게를 갖고 그 판단을 내려야 할 것이다. 늘 판단을 미룸으로 사람들 사이에 은근함으로 함께 있을 수 있게된 닉이 '개츠비는 위대했어'라고 판단한 이후에는 후회없이 그 모든 도시의 사람들과 위대하지 않은 불빛들에 환멸을 보낸 것처럼 말이다.  

  하지만, 그 모든 것들이 의미가 없어지는 듯 해도, "개츠비는 위대했어"라고 말함으로써 아직 위대함의 초록불빛은 꺼지지 않았다고 말하는 닉의 그 고집스러움은 또한 그의 새로운 매력이라 생각한다. 

  결국 침묵이니 판단이니 하는 것도, 도시의 화려한 파티불빛이든 해안가의 초록빛 작은 마당의 불빛이니 하는 것도, 해가 뜨면 사라질 어둠속의 한 때의 불빛일 뿐이듯 하다. 시간이 지나면, 책장을 덮고 나서 모든 감정과 이야기가 하나의 단어나 하나의 감정으로만 기억되듯이, 중요하게 여겼던 삶의 순간순간들도 그때는 이모양저모양 여러생각을 하지만 결국은 지나가고 덮어놓고 나면 그저 하나의 감정과 하나의 단어로만 남게 될 뿐이다. 

  사람이나 관계, 이익이나 체면 등을 생각하거나 고려하지않은 무겁지 않은 묵묵함과 시끄럽지 않은 떠들어댐이 즐거운, 그런 시간들이 가장 좋다. 하지만 그런 만남을 갖기 위해서라면 먼저 자신의 밑바닥과 마음을 드러내 놓는 진솔함이 있어야 할 터. 그런 용기를 갖기도 어렵고 또한 그런 마음과 용기를 넉넉함으로 받아줄 사람을 만나는 것 또한 더욱 어려운 일이다. 그제나 지금이나 오히려 개츠비의 순수한 욕망이 더욱 위대해 보이는 그런 시대에 살고 있으니까 말이다. 

  어쨌든 내 문제든 사람들의 문제든간에 그런 만남을 갖기 힘들다면, 사람에게 속 얘기를 하기보다는 책속의 이야기에 내 속마음을 드러내며 책에게 내 얘기를 하는 것이 더 낫지 않나 쉽다. 그리고 그것이 독서의 유익이기도 하다. 그럼에도 읽던 책을 덮고 커피 한잔을 앞에 놓고 수다를 떨 수 있는 사람을 만난다면 그것만큼 행복함을 주는 일도 없을것이다. 그렇기에 사람들은 늘 가슴을 열고 얘기할 수 있는 또 다른 사람들을 찾는 듯 하다. 

  다만, 다시금 생각해도 가슴을 열고 얘기하는 친밀함을 갖는 것도 중요하겠지만 사회적인 관계에서는 다소 침묵하고 판단을 드러내지 않는 것이 더 지혜로운 처세일 것이다. 더불어 내게 필요한 것은 내적인 친밀함만이 아니라 적절한 사회적인 처세라는 것에 다시금 고개가 끄덕여 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