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OOJOOSOO

View Original

[일상] 사람

주변 사람들과 사회적인 평판때문에 사회적인 이슈에 대해서 자신의 생각이나 가치관을 드러내지 않는 침묵과 신중함이 있다. 흑백논리가 강하고 정서적으로 자주 과열되는 상황에서, 주변 사람이나 공동체에 위협이 되지 않으면서도 자신의 자리를 유지할 수 있는 유용한 처세술이요 삶의 지혜라고 생각한다.

다만 그런 사람의 처세술과 지혜는 인정하고 이해하지만, 그런 사람을 그다지 신뢰하지는 않는다. 그에게는 자신의 자리가 가장 중요하고 두번째로는 사람들의 평판이 중요하기에 언제든지 자신을 위해 자신이 했던 말과 신의를 저버릴 수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말을 분명하게 하는 사람들을 신뢰하는 것도 아니다. 사람의 말과 행동이 얼마나 다른 것인가 하는 것은 이미 충분히 경험했기 때문이다.

이렇게 써놓고 보니 같잖게 사람에대해 시니컬한 태도를 가진 것처럼 보이는데 사실이 그렇다. 사람에 대해 그다지 기대지도 않고 기대하지도 않는다고나 할까. 사람들에 대한 비관적인 예측은 늘 맞지만 긍정적인 희망은 늘 빗나가기 마련인지라, 습관적으로 긍정적인 말을 내뱉는 것처럼 사람에대한 희망은 갖지 않으려고 노력한다.

하지만 가끔 이런 시니컬함을 넘어서 특별한 말과 행동을 하는 아름다운 사람을 마주한다. 그럴 때면 너무 세속적이 되어버린 내 자신과, 사람을 보는 안목이 내 경험의 한계를 넘어서지 못한다는 사실에 부끄러움을 느끼며 사람에 대한 판단을 함부로 하지 말자며 다시금 겸손의 옷깃을 여미게 된다.

‘이 사람이 어떻다 저 사람이 어떻다’ 그 사람을 규정짓거나 그 사람의 마음의 의도까지 넘겨짓는 것은 내게는 주제 넘는 짓이다. 나는 그럴만한 안목이 없다. 하지만 사회생활을 할 때에는 사람의 됨됨이가 어떠한지를 미리 알아놓고 상대를 대하는 것이 여러모로 편하기에 나도 모르게 습관적으로 상대방을 판단하고 나름의 틀로 분류를 한다.

곰곰히 생각해보면, 그가 침묵을 하건 어떤 말을 분명하게 하건 그것은 그다지 큰 문제가 아니다. 침묵하지만 소리없이 행동으로 분명하게 말을 하는 이도 있고, 말을 하지만 행동은 전혀 다른 삶을 살아가는 이도 있다. 말이 중요하기에 말로서 자신의 생명을 거는 이도 있고, 말은 별로 중요하지 않기에 말로는 공수표를 남발하지만 행동은 전혀 다른 길을 걷는 이들도 있다. 저마다 서있는 자리가 다르기 때문에 내가 선 자리에서 그의 의도와 행동을 다 판단하고 예측하기는 어렵다.

비극과 혼돈의 시대에는 강한 빛과 어둠만이 힘을 갖는다. 제3의 길을 걷는 자들은 빛과 어둠 모두에게 배척을 받는다. 당장의 확실함을 원하는 사람들에게 모호함과 불분명함은 견디기 힘든 고문이다. 시끄러운 소리에 귀를 막고 어지러운 화면에 눈을 감아버리고 침묵하는 이들도 있을 것이고 사람들이 무서워 보도블록 위에 사람들의 발자국이 없어 보이는 곳으로만 걷길 원하는 겁먹은 순한 동물같은 사람도 있다.

나 또한 누군가에게는 마음에 들지 않는 사람이었을테고, 내 마음에도 그런 사람들이 몇몇 떠오르기도 한다. 하지만 이런 것을 생각하고 염두에 두며 사람을 알아간다 해도 그게 나와 무슨 상관이란 말인가. 나로서는 완전히 알 수도 없고 결과를 안다해도 그것을 신뢰할 수도 없고, 신뢰할 수 있는 판단이라 할지라도 사람을 변화시킬 수 없는 내 자랑밖에 안되는 쓸모없는 능력 일 뿐이다. 내게는 내가 해야 할 일을 성실하게 하고, 내일을 비관적으로 예측하되 희망적인 일들에 대한 기대와 기도를 잃지 않는 것이 필요할 뿐이다. 이성은 비관을 말하지만 신앙은 희망을 말하니 하나를 자음 삼아 하나를 모음 삼아 내가 바라는 것들을 기도로 써내려 갈 뿐이다.

사람에 대해 생각해보지만 결국 내가 알 수 있는 것은 그나마 내 자신 뿐이니 결국 내 자신에게 더욱 따스한 용납과 차가운 칼날을 들이대는 것만이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