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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 첫 고구마

첫고구마가 들어왔습니다. 대략 논에 첫 낫질이 시작될 때 쯤이면 고구마도 캐기 시작합니다. 고구마를 캐면 항상 처음에 크고 좋은 것들로 한상자를 갖고 오십니다. 첫수확을 하나님께 드린다는 개념이죠. 오래 전 시골에서는 늘상 있던 일이었지만 갈 수록 사라져가는 풍속인데 제가 섬기는 교회에는 아직 이런 습관들이 남아있습니다. 구약성서의 율법을 그대로 지킨다기보다는, 농사를 잘 지은 것에 대해 하나님께 감사를 드리며 인간적으로 순전하게 목회자를 섬긴다는 의미가 있는 듯 합니다. 첫 열매를 받는다는 건 꽤 신기하고 유쾌한 일입니다.


고구마는 낮에 캐서인지 아직 물기가 조금 있습니다. 하루이틀 더 건조되어야 맛이 날 것 같습니다. 올 해 비가 너무 많이 와서 고구마가 맛이 좀 덜 할 거라며 바로 먹지 말고 조금 숙성시켜서 먹으라는 팁까지 알려 주십니다.


받은 고구마를 마당 한켠에 놓고 그동안 살아온 인생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보이는 물건에는 항상 보이지 않는 이야기가 따라붙어 오기 마련이죠. 그동안 어떠셨는지, 괜찮으셨는지 여쭤보면 이런저런 얘기들이 고구마 줄거리처럼 줄줄 딸려 나옵니다. 교우는 밭의 고구마를 캐고 나는 교우의 삶에 묻혀있는 이야기를 캐는 느낌입니다.


묻고 듣는 것은 참 중요한 듯 합니다. 강단에서 내려오면 대부분의 일이 몇마디 물어보고 긴 시간을 듣는 것이 일입니다. 사람들마다 묻혀있는 것들이 비슷하면서도 저마다의 이야기가 다릅니다. 같은 얘기를 수십번씩 듣기도 하고, 같은 얘기가 매번 조금씩 달라져 가는 것을 느끼며 조금의 미소를 띠며 듣기도 합니다. 이야기가 반복되고 깊어지다보면 묻혀 있을 때는 쓴뿌리였던 것들이 어느덧 사라지고 웃으며 얘기할 수 있는 이야기거리만 남게 되기도 합니다.


교우는 어둠 속으로 집으로 돌아가고 나는 고구마를 방으로 가지고 들어왔습니다. 오늘 설교를 망쳐서 몸과 마음이 흙속 깊이 묻힌 느낌어었는데 고구마를 받으며 얘기를 듣고 나니 어느덧 내가 흙밖으로 빠져나온 고구마가 된 듯이 마음이 한결 가벼워졌습니다. 아직 마음이 축축한 느낌은 고구마가 조금 마르길 기다리는 동안 며칠 지나면 다 사라지게 될 것입니다. 그러고 보니 고구가마 더욱 정겹게 보입니다. 더 애정을 갖고 맛있게 먹어 줄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고구가마 왔습니다. 역시 오늘도 가을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