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한 역사학자가 쓴 성경이야기[구약], 김호동
지난 주에 사놓은 책을, 이번 명절 기간에 읽었다. "한 역사학자가 쓴 성경이야기 [구약편]", 김호동, 까치출판사, 2016
지은이는 김호동 교수로 서울대학교 동양사학과 교수다. 웹서핑하며 이책 저책 고르다가 구입했는데 지은이가 이름이 익숙하다 생각해서 보니 전에 유목민역사를 공부하다가 나름 재미있게 읽은 "유라시아 유목 제국사"를 쓴 분이었다. 기독교인인 줄 몰랐는데 기독교신앙인이었다. 책을 살 때는 깊은 역사적 정황으로 성경의 이야기를 신랄하게 비평하는 것을 기대했는데 내용은 그것과는 달리 꽤 은혜롭게 구성되었다. 예상과는 달라 처음 읽을 때는 영 성에 차지 않았지만 읽어가는 가운데 이 책이 가진 여러가지 장점들을 보면서 결국 끝까지 다 읽고 말았다. 책을 읽고 따로 정리하는 경우가 드문데 연휴에 할일도 없고 내 자신을 위해서 짧게 나마 정리를 한다. 책은 379페이지이고 독서시간은 3일이고 총 6시간이 걸렸다. 빨리 읽으면 5시간 정도 걸릴 듯 한데, 간간히 내용을 머리 속에서 정리하면서 읽으려면 시간을 조금 갖고 보는 게 나을 듯 하다. 책을 읽고 리뷰를 쓰는데는 1시간이 걸렸다.
장점
이 책의 장점은 정보를 전달하는 방식과 균형에 있다. 정보를 전달하는 방식이 어느정도 명료하고, 그 내용에 균형감이 있다. 정보 전달 방식은 독자로 하여금 이것이 역사적 사실인지, 성경 이야기인지, 혹은 해석이나 추측인지를 알 수 있게 해준다. 문장의 끝을 "~했다. ~ 것이었다. ~로 추측한다. ~ 생각한다. ~을 것이다."를 구분해서 사용한다. 독자가 작가의 의도를 오해하지 않게 도와준다. 정보와 설명과 주장이 섞여있는 책들이 많다. 그런 책들은 아무리 그럴싸한 내용이라 할지라도 정보로서의 가치가 현격하게 낮아진다. 학문적인 기본을 갖추고 정보전달의 목적을 위주로 한 글과, 선포와 선언을 중심으로 내용을 구성한 설교문의 차이라 할 수도 있다.
작가는 나름 책을 쉽게 쓰려고 노력했다. 역사적인 사건이나 역사에 큰 족적을 남긴 제국들을 더 깊이 설명할 수 있었겠지만 모든 것들은 성경 이야기를 이해하는데 도움이 되는 수준에서 풀어간다. 그렇기에 이 책의 독자는 기본적으로 성경과 역사에 대한 기본적인 지식을 갖고 있는 사람을 대상으로 한다. 구약성경을 한 번 이상 읽어보거나, 성경 전체의 이야기를 성경공부든 설교든 맥락을 보며 공부한 사람이라면 책의 흐름을 이해하는데 어려움이 없다. 하지만 세계사의 흐름에 대한 지식도 조금은 필요하다. 앗시리아, 바벨론, 페르시아라는 나라를 처음 들어 보는 사람이라면 이 책을 이해하기 어려울 것이다. 고등학교 수준의 세계사 지식이라면 읽는데 충분하고, 조금 더 깊은 지식들을 갖고 있는 사람이라면 더욱 입체적으로 읽을 수 있다.
작가의 학문적 습성상 이 책은 균형감이 있다. 성경 자체의 이야기를 성경이나 신앙으로 해석하기보다 역사적인 정황 속에서 파악하려 한다. 역사적인 정황이라하면 정치적이고 사회적인 눈으로 성경 이야기를 바라본다는 뜻이다. 저자가 역사학자라는 점을 느낄 수 있는 부분이다. 저자는 처음부터 끝까지 이런 균형감을 잃지 않는다.
그렇다고 책 내용이 역사비평같은 진보적인 학문적 비평으로 이뤄지지는 않는다. 내용은 온건하게 보수적이다. 보수적이라 함은 성경자체의 이야기를 일단의 사실로서 받아들인다는 얘기며 성경의 역사성을 변호한다는 의미다. 성경의 사건들을 역사적인 사실로 뒷받침하거나 역사적인 정황속에서 설명하고 해석하려고 한다. 역사적 사실이 없는 경우에는 성경의 사건을 가능성이 있는 사건으로 변호하면서, 검증되지 못한 사실로서의 역사로 받아들인다. 그런 까닭에 보수적이다. 하지만 학자로서의 습성과 지성은 보수성에 열린 태도를 취한다. 글자 그대로의 해석이 아닌 역사적 정황으로 살펴보는 까닭에 성경을 성경으로 푸는 형태는 아니다.
단점
반면에 위에서 열거한 내용은 이 책의 한계를 분명히 한다. 먼저 정보전달 방식이 “어느정도” 명료하다고 했는데 이 말은 그렇지 못한 부분도 있다는 것이다. 정보와 해석을 구분하는 문장은 간혹 불분명하다. 해석의 근거도 빈약하거나 제시하지 않을 때가 있다.
성경이야기를 설명하는 관점이 정치적이고 사회적이라 했는데 이는 성경이야기를 더 신선하고 생동감있고 현실감있게 볼 수 있게 해주지만, 본문 자체가 안고 있는 신학적인 문제나 히브리어 자체의 해석의 문제를 다루지는 않는다. 전문적이지 않은 분야에 대해서는 거론하지 않는 학자의 습성이 드러난다. 신학적인 논쟁점이 있는 이야기나 본문 해석의 문제는 거론하지 않는다. 일반적인 독자에게는 오히려 더 복잡하지 않게 이야기를 읽을 수 있어서 좋겠고, 반면에 본문을 더 깊고 폭넓게 보고 싶은 사람들에게는 아쉬움과 한계가 될 것이다. 그럼에도 이 책이 대상으로 하는 독자가 구약과 역사에대한 어느정도의 지식과 감각을 갖고 있는 사람이라고 한정한다면 충분히 이해할 만한 수준이다.
누구에게 도움이 될것인가?
그렇다면 이 책을 읽고 도움을 얻을 수 있는 사람은 어떤 이들일까? 구약성경의 이야기를 역사적이고 정치적인 눈으로 조금 진지하게 읽고 싶은 사람에게 권하고 싶다. 설교자나 성경을 조금 더 깊이 보고 싶은 교사, 혹은 기독교인은 아니지만 기독교 신앙에 호의적이면서 합리적인 기독교 지성인이 들려주는 성경이야기를 듣고 싶은 사람이라면 큰 도움이 될 것이다. 일반적인 교인에게는 권하기가 싶지 않은 책이다. 어느정도 역사에 대한 기초 지식이 있는 사람에게 권할 수 있는 책이다.
목사에게는 도움이 될까? 어느정도 된다. 책을 천천히 읽어나가면서 구약성경이 다시한번 정리되는 효과가 있고 본문만 보다가는 놓칠 수 있는 성경 밖 역사적인 상황들에 대한 그림을 그려 나갈 수가 있다. 이 책 자체를 통해서 설교에 쓸, 이른바 설교거리를 찾기는 쉽지 않겠지만 설교의 기본이 되는 밑바탕을 조금 더 탄탄히 다질 수 있다.
설교거리가 있다면
그럼에도 책을 보면서 나름 기억에 남으면서 설교에 쓸 수 있는 부분이 있다면 그 중 일부는 다음과 같다. 자세한 내용은 책을 사서 보기를 권한다.
1. 데라는 역사적으로 언제, 왜 우르를 떠났을까? 우르의 애가는 무엇인가?(p25)
2. 데라가 우르를 떠난 것과 아브람이 하란을 떠난 것의 차이는 무엇인가? (p27)
3. 유대지역에는 지금도 소금이 많은 지역과 소금기둥이 있다. 소돔과 고모라의 멸망 중 뒤를 돌아보다가 소금기둥이 된 롯의 아내 이야기는 어떻게 받아들일 수 있을까? (p45)
4. 요셉은 은20세겔에 팔려갔다. 당시 나귀 한마리가 30세겔이었다는 것과 그 후로 노예의 값이 달라지는 것을 생각할 때 당시의 노예와 인권을 생각해 볼 수 있다. (p81)
5. 쿠란에 소개된, 요셉과 보디발의 아내에 대한 뒷이야기를 들어보자. 성경에서 발단이 되었지만 새롭게 구성되어 세계적인 이야기가 된 러브스토리를 볼 수 있다. (p83)
6. 출애굽의 역사적인 시기는 어느때인가, 그리고 그렇게 추정하는 이유는 무엇인가?(p90)
7. "홍해"의 원래 뜻이 빨간 바다 Red Sea가 아니라 갈대바다 Reed Sea라는 사실을 알고 있는가? (p107)
8. "마라의 쓴물"과 같이 지금도 그 근방에는 "쓴 호수(Bitter Lake)" 곳이 있는 것을 확인해보자. (p108)
9. 수십년전의 고고학발굴로는, 여호수아가 "여리고성"을 공격했다는 그 때 이미 여리고성은 무너져 있었다. 지금은 고고학적 결과가 어떻게 바뀌었는가?(p140)
10. 이스라엘이 가나안 땅에 들어와 전쟁하고 왕국을 이루는 모든 과정속에서 12지파간의 갈등과 반목이 엄청나게 심했다는 것을 알고 있는가?
11. 다윗은 자신의 아들인 암논이 다말을 겁탈한 사건에 분노하면서도 사건을 모른체한다. 왜 그랬을까? 정치적인 관점으로 보자.(p231,233)
12. 솔로몬은 빛과 어둠이 있는 사람이다. 솔로몬의 어둠을 읽어야 그 후의 이야기가 이해된다. 솔로몬이 백성에게 부과한 노역과 세금을 당시 제국과 비교해 보자. (p259)
13. 엘리야와 엘리사의 사역의 차이점을 비교해 보자. 엘리야는 종교적인 부분에 집중했지만, 엘리사는 다른 영역으로 관심을 돌린다. (p299)
14. 아마샤와 웃샤 왕에 대한 성경의 평가는 좋지 않다. 정치적인 성과는 어떠했을까? (p317)
총평
목회자나, 구약성경을 조금 더 새로운 관점으로 정리하면서 읽기 원하는 이들에게 권할만 하다.
책값은 18,000원 살만한 가치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