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의 빛 안에서
우리가
빛을 보리이다”
(시편36:9)

[일상] 혼자만의 시간에 실패했다

새벽이든 저녁이든 한낮이든 자기만의 고독한 성소로 찾아들어가는 것이 필요한 요즘입니다. 

하지만 혼자 방안  책상에 앉아 있으면 잡념이 많이 떠오릅니다. A4 한장 채우기도 쉽지 않습니다. 하지만 카페에 들고 가서 타이핑을 하면 집중도 잘되고 빠른 속도로 타이핑이 됩니다. 카페의 소음과 열린 느낌이 마음의 잡념을 없애주서 그런 듯 합니다. 학교 다닐 때 귀에 이어폰을 끼고 음악을 틀어놓고 공부하던 것과 비슷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런데 언제부터인가 이런 방식에 문제가 있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카페나 열린 장소에서 타이핑을 하면 내 마음 속에 있는 잡념들이 떠올라 그것과 싸울 시간을 놓쳐버립니다. 더 효율적으로 써내려가지만 결국 내 속에 있는 잡념과 다른 찌꺼기들을 마주볼 시간을 갖지 못하게 됩니다. 글을 쓸 때에는 몰랐는데 나중에 그 글을 읽고 말을 할 때면 카페에서 느끼지 못했던 것들이 드러납니다. 아무리 흐름을 잘 잡고 구어체로 바꾸어 놓아도 문제가 생깁니다. 마음 한 부분이 삐걱거리고 다른 생각들이 삐집고 들어옵니다. 처음에 준비할 때 부터 고려했어야 했는데 카페의 소음에 무시되었던 것들이 마이크를 잡기 시작하기 직전에야 터져나옵니다. 

꼭 자기 혼자만의 시간을 가져야 합니다. 내 마음 속에 있던 것들과 마주보는 지리하고 힘든 시간을 견뎌내야 합니다. 그것들을 해결하지 않고 마음 한 구석에 눌러 놓으면 언제고 다시금 튀쳐 나와 써놓은 글과 정리해 놓은 생각들을 휘젖고 다닙니다. 이 시간은 분명 효율이 낮아 보입니다. 하지만 이 시간을 거친 것들은 내 마음과 생각에 큰 선물을 줍니다. 표현하기 어렵지만 이렇게 표현하고 싶습니다. "거칠 것이 없노라"

마당과 카페를 좋아하는 나로서는 이런 습관으로부터 벗어나는게 꽤 힘들었습니다. 그나마 마당이라는 중간지대가 있었기에 가능했던 것 같습니다. 마당은 카페는 아니지만 혼자있는 방에서 벗어나 자연이라는 잡음을 가진 야외 카페와 비슷하기 때문입니다. 우선 순위를 정하는 것이 도움이 되었습니다. "마지막 결과물 전에 반드시 나 혼자만의 시간을 충분히 갖는다"가 우선 순위입니다. 생각해보면 처음에는 이 우선순위가 지켜졌었는데 언제부터인가 너무 문화적인 혜택에 내 마음을 기대었던 것 싶습니다. 어쨌든 지금은 카페건 마당이건 그 무엇이건 그 자체로 즐기고 있습니다. 단지 나 혼자만의 시간으로 들어가기 전까지는 그것들을 모두 미완성으로 생각합니다. 

혼자 있으면 잡념이 많이 떠오릅니다. 전에는 그것이 싫어서 카페로 도망쳤는데 이제는 이런 잡념들이 오히려 내게 큰 도움이 됩니다. 잡념들은 내 자신이 정리될 부분이 어떤 점인지를 가르쳐 줍니다. 또 잡념들은 결국 내가 살아오면서 세상과 사람들로부터 받은 일종의 정보로 내게 여러가지 유용한 것들을 알려줍니다. 그렇기에 잡념을 마주하며 내 마음고 생각을 정리하는 것은 내게 여러모로 큰 유익을 줍니다. 

아직도 이런 것들이 익숙하지는 않습니다만 다시금 쌓는 재미도 있습니다. 늘 뻔하던 내 자신과 세상에 새로움을 느끼고 발견하며 그것들을 배워간다는 것이 알마나 신나고 즐거운 일인지 모릅니다. 비록 나로부터 도망치고 싶어 내 마음을 들여다보는 것을 멀리한 실패를 겪었지만 지금은 내 속의 실패와 잡념들을 마주하려고 노력합니다. 그리고 그런 노력의 시간들은 분명 내 자신을 배반하지 않을 것이라 믿음도 있습니다. 나는 아직도 실패 중에 있습니다. 다만 이런 실패 앞에서 내 자신을 더 바로 보며 깊이 알아가길 원할 따름입니다. 이런 과정이 결국 내게 큰 힘이 될거라 믿기에 그렇고, 또 혹 누군가 같은 실수의 자리에서 조금 주저하고 있다면 나의 실패담을 좀 더 자랑스럽게 얘기해 줄 수 있을테니까요. 

새벽이든 저녁이든 한낮이든 자기만의 고독한 성소로 찾아들어가는 것이 필요한 요즘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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