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인류의 기원 (이상희,윤신영. 사이언스북스. 2015)
유인원(類人猿)의 한자 뜻은 “사람과 비슷한 원숭이”다. 원숭이 같은데 따지고 보면 원숭이가 아니다. 사람같은데 따지고 보면 사람도 아니다. 그래서 사람과 비슷한 원숭이, 유인원이다. 엄격히 말해서 유인원은 원숭이가 아니다. 영어로 원숭이는 “Monkey 멍키”고 유인원은 “Ape 에이프”다. 나는 monkey멍키도 ape에이프라는 영어 단어도 이미 알고 있었고 방금 전에도 원숭이와 유인원을 다르게 썼지만 원숭이와 유인원 이 둘을 구분하기 시작한 것은 불과 하루 전이다. 어제 이 책을 읽고 나서야 이 둘을 구분할 수 있었다.
“유인원과 원숭이를 볼 때 가장 눈에 띄고 분명한 차이는 꼬리의 유무입니다. 꼬리가 있으면 원숭이고, 꼬리가 없으면 유인원입니다. 절대 혼동할 수 없는 차이입니다. 그런데 유인원 중 마지막으로 게놈이 밝혀진 기번(gibbon)의 한국어 명칭은 바로 ‘긴팔원숭이’입니다. 유인원의 이름이 ‘긴팔원숭이’인 이상, 혼돈스러운 명칭을 바로 잡는 일은 매우 어려울 것만 같습니다. 참으로 유감입니다.” (인류의 기원 중에서)
책을 보던 중 내 머리 뒤에서 음악이 들리는 듯 하다. 쿵쾅쿵쾅 빰~ 빠밤 쿵쾅쿵쾅. 들리는 음악은 “짜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이다. 음악소리와 함께 영상이 떠오른다. 스탠리큐브릭 감독이 1968년에 만든 영화 “2001 스페이스 오딧세이 (2001: A Space Odyssey)”의 처음에 나오는 유명한 장면이다.
영화가 시작하면 바위산에서 옹기종기 모여있던 원숭이들은, 아니 꼬리가 없는 유인원들 중 한마리가 죽은 동물의 뼈다기를 잡고 흔들다가 다른 뼈다기를 깨기 시작한다. 뼈가 조각나자 유인원은 더욱 세게 뼈를 부순다. 팔보다 더 강한 팔의 연장인 도구를 사용한다. 스탠리큐브릭은 유인원의 손에서 빠져나간 도구가 하늘을 향해 날아가다가 우주선으로 변하는 장면을 멋지게 그려낸다. 유인원과 현생 인류의 수 백 만년의 간극을 도구 하나로 이은 것이다.
유인원의 머리 속에서 “짜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는 음악이 나왔을리는 없다. 하지만 책을 보면서 생각하니 그 후 수 십만년 혹은 수백만년 뒤 어느 유인원은 교향곡은 아니지만 목소리로 자연의 소리를 따라하고 자신의 감정을 높낮이로 표현했을지도 모른다. 네발로 오르락내리락 하고 달리던 이들이 두발로 걷기 시작하면서부터 자유로워진 손은 도구를 사용하기 시작하고 목은 더욱 다양한 소리를 낼 수 있는 구조가 되었기 때문이다. 더욱이 호모에렉투스, 네안데르탈인, 구석기시대 인류라 불리는 호모사피엔스에게도 놀라운 예술적인 재능이 있다는 것을 생각하면 그들의 모습이 눈앞에 그려지지 않지만 단지 원숭이나 침팬지 같은 수준은 아니었을거라 상상한다.
책을 보면서 몇 년 전에 본 다큐멘터리 영상이 생각났다. “잊혀진 꿈의 동굴” (Cave Of Forgotten Dreams,2010)이란 다큐멘터리로 1999년에 발견된 동굴 속에서 3만 5천년 전에 그려진 그림들을 소개하는 영상이다. 그 곳에 그려진 그림들은 현대인이 그린 것과 전혀 차이가 없었고 오히려 동굴 벽과 동굴 속에 있었을 것으로 추정된 횃불의 그림자와 어우러져 묘한 생동감과 더불어 종교적인 느낌까지 자아냈다.
하지만 스탠리큐브릭의 영화는 유인원의 초기 모습을 그려서 그렇다손 치더라도, 현대인들은 오랜 옛날의 유인원들을 등이 굽고 늘어진 팔다리에 무식해보이는 모습으로 상상했다고 한다.
“네안데르탈인이 나의 조상이냐 아니냐의 문제는 구미인들에게는 민족 감정의 문제입니다. 이들에게 네안데르탈인은, 밖에 대놓고 말하기 창피한 친척이었어요. 네안데르탈인이 3만년 전이든 10만년 전이든 내 혈통과 관련되었다는 것이 싫은 모양입니다. 왜일까요?…(네안데르탈인의 전형적인 모습은) 바로 유럽 사람들이 생각했던 식민지 사람들, ‘미개한 원주민’의 모습입니다. 네안데르탈인이 원주민의 모습과 닮게 복원됐던 것은 우연이 아닙니다. 당시 서양 사람들의 의식의 한 측면이 숨어있었던 것이지요.” (인류의 기원 중에서)
역사 속에서 과학은 사람들이 세상에 대해 갖고 있던 편견이 오해고 곡해였음을 드러내곤 했다. 우리는 역사를 통해서, 기존의 세계관과 지식이 잘못되었다는 것을 알고 그것을 인정한다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이라는 것을 알고 있다. 그리고 과학 또한 또다른 편견으로 세상을 바라본다는 것도 부인할 수 없는 인류의 역사다.
그런데 이 책을 보면서 몇번이나 미소를 짓게 되는 부분이 있었다. 과거 유인원의 형상을 복원하고 DNA를 분석함으로 얻어진 결과를 해석하는 과정을 통해 본 것은, 인간에 대한 편견과 이미 내려진 학문적 결과를 극복하고 수정해가는 인류학의 모습이었다. 네안데르탈인의 무식한 모습은 서구 열강이 정복하고 다스렸던 원주민들의 모습과 의도적으로 겹쳐졌다. 인종에 대한 편견과 자기합리화를 위해 과학적 결과물을 해석하고 빈 여백을 자기들의 생각으로 채우는 학자들의 지적인 불성실함을 보여준다. 이런 모습또한 지식을 고도로 추상화하면서도 곡해하는 현생 인류의 특징이지 않을까 싶다. 하지만 이 책은 그런 오해와 잘못된 해석을 바로잡는 인류학의 지적인 성실함을 보여 준다.
옆길로 새는 이야기이지만 내가 대학때 봤던 창조과학 책에서 보면 유인원 유골을 자기 멋대로 그려낸 인류학자들의 불성실함은 창조과학자들이 진화론을 비판하는 몇몇 단골메뉴 중의 하나였다. 나는 그 뒤로 인류학을 그다지 좋지 않게 보았다. 인류학은 뼈다기 몇개를 갖다 놓고 빙하기에 맞춰 인간과 동물이 어떻게 살았는가하는 그럴싸한 소설과 비슷한 것이다라고 생각했다. 마치 베르나르 베르베르의 소설 “아버지들의 아버지”와 비슷하다고나 할까? 정말 재미있게 읽었지만 어디까지가 과학적인 결과물이고 어디까지가 상상인지 알 수 없는 기묘함은 내가 이전까지 갖고 있던 인류학, 특히 인류의 기원을 설명하는 인류학에대한 이미지였다.
그러나 편견과 곡해를 바라잡는 역사와 더불어 최신 분자생물학의 도움을 얻어 유인원 유골의 DNA를 분석해서 고대 유인원의 신체적 능력을 예상하고 현생인류와의 연관성을 설명하는 점에서 기존 인류학에 대한 나의 무지함과 무식함을 부끄러워 할 수 밖에 없었다. 물론 이 책이 인류학에 대한 깊은 내용을 설명한 것이 아니라 일반 대중들에게 인류학의 기본적인 흐름과 호기심을 자극하는 내용으로 구성되었기에 그 내용의 깊이가 한계가 있음은 분명하다. 그렇기에 이 책 한권으로 마치 현재 인류학의 많은 부분을 안 것같은 착각과 감동에 빠지는 것 또한 우습게 보일 수 있다. 더욱이 나는 책을 읽으면 쉽게 감동받고 그 책 세계 속에 쉽게 몰입되는 경향이 강하기에 이런 모습이 조금은 과도한 표현일 수도 있다. 하지만 다시한번 차갑게 내 자신을 돌아보더라도, 내가 이 책을 읽으며 감동받고 내 자신의 무지함을 돌아보게 되었다는 점만은 분명하다. 책 속에 나타난 사람들의 편견과 오해는 오히려 내 자신의 이야기 일 것이다.
“학교에서는 한민족의 조상이 동북아시아 또는 시베리아에서 왔다고 배웁니다. 동북쪽의 대륙에서 우리가 유래했다는 사실에 대해 우리는 큰 거부감을 갖고 있지 않습니다. 그런데 만약, 우리의 조상이 실은 동남아시아에서 왔다고 하면 어떤 기분이 들까요? 거부감이 들까요? 그렇다면 한 번 생각해 보세요. 그 거부감이 혹시 지금 한국인들이 동남아시아 사람들에게 갖고 있는 편견에서 나온 것은 아닐지요? 그렇다면 20세기 초 유럽인들이 네안데르탈인을 보며 갖던 편견과 무엇이 다를까요?”
이상희 교수는 책의 각 장마다 하나의 주제를 설명하면서 끝에 현생 인류로서 우리가 갖고 있는 편견과 이해에 작은 물음을 던진다. 이 물음들은 각 장의 주제와 더불어 다양한 생각 거리를 만들어 주기에 흥미롭다. 하나의 강의를 듣고 여럿이 모여 분반 토의하며 대화하기에 알맞은 구성이다. 책에서는 기존의 유인원들과는 신체구조도 다르고 생활방식도 달라진 유인원의 이름과 뼈가 발견되는 이야기를 들려준다. 언젠가 한번쯤은 들어봤음직한 이름들이다. 오스트랄로피테쿠스, 호모 에렉투스, 네안데르탈인, 호모사피엔스 등이 그러하다. 지금으로부터 길게는 400만년전부터 짧게는 7만년, 1만년 전까지 이 땅을 살다가 사라진 꼬리없는 유인원들의 이름이다. 이름을 외우지 못하고 각각의 정보를 다 기억하지 못해도 상관없다. 그냥 재미있게 읽기만 해도 뭔가 남는 그런 책이다.
이 책이 선 곳은 너무도 분명하고 정확하다. 과학에 대해 기본적인 지식을 가진 대중에게 인류학을 소개하는 소개서다. 인류학에 입문하기 위해 던진 떡밥이라고나 할까. 떡밥은 배가 고프거나 호기심이 많은 물고기가 물기 마련이다. 그런점에서 이 책은 인류학에 대한 갈증이 있었지만 쉽게 설명한 책이 없어서 배가 고팠던 사람이나 혹은 이것저것 과학에 관심이 많은 호기심 많은 머리를 가진 사람에게 알맞은 책이 되지 않을까 싶다. 바로 나처럼 말이다. 이 책을 보고 나면 아마도 인류학에 대한 또 다른 책이 더 보고 싶어서 인터넷 검색을 하는 사람도 있을 것 같다.
하지만 작은 아쉬움들도 있다. 더 풍성한 이해를 위해서 자료 그림이 더 많았으면 좋았겠다는 점, 그리고 더욱 과학 초보자를 위해서 부록 I로 있는 “진화에 대하여 궁금했던 몇가지”가 챕터 3이나 4장 정도에 위치해서 진화에 대한 기본적 지식을 환기시켜주었으면 더 좋지 않았을까 한다. 혹시나 책에서는 여러가지 주제로 이야기가 분산되어서 재미있기도 하지만 진화를 설명하는 ‘흐름이 너무 끊기는 느낌이네’라고 생각되는 사람이라면 부록II “인류 진화의 계보”를 먼저 읽어도 좋을 듯 싶다. 나는 중간에 그런 생각이 들어서 부록 II를 읽기 시작했는데, 읽기 시작하면서 ‘그래 바로 이거지’라고 고개를 끄덕였다가 알 수 없는 학명들이 쭉 이어지는 부분에서 성경에 “사람이름만 나오는 족보”를 보는 듯한 어지러움을 느끼고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긴 했다. 하지만 책을 다 읽고 다시 보니 편집자가 정리한 차례가 가장 알맞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도 마지막 한 페이지에 일종의 “생명의 나무” 형태로 계보를 그려주었다면 더 좋지 않았을까 싶다.
책을 읽은 소감을 유인원이란 말과 유인원이 나온 영화로 시작했으니 끝도 유인원이 나온 영화를 이야기하면서 마무리 지어야겠다. 스탠리큐브릭이 그린 영화 속 유인원은 우연히 도구를 발견하면서 새로운 세계에 대한 짜릿함을 느꼈을지 모른다. 하지만 나는 도구로 인한 짜릿함이 아닌 지식으로 인한 짜릿함을 경험했다. 최근에 나온 유인원 영화 <혹성탈출 : 반격의 서막>의 영어 제목은 ‘Dawn of the Planet of the Apes’ 유인원들 행성의 새벽”이다. 털없는 유인원과 털있는 유인원들이 공존하며 싸우는 SF 영화지만 꽤 심오한 대사와 내용을 담은 영화다. 영화는 먼 미래의 이야기를 그린다. 있을 수 없는 세계지만 그런 세계가 있다면 충분히 그럴 수 있음직한 내용을 그려냈다. 이 책 “인류의 기원"은 과거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상상할 수 없는 세계지만 상상할 수 있는 재료를 가지고 있음직한 내용을 그려낸다.
이 책을 본 사람은 알겠지만 이상희 교수는 인류학의 성과와 결과에 대해서 “이것은 100% 그러하다”라는 정답을 말하지도 고집하지도 않는다. 다만 지금까지 걸어온 인류학의 과정과 지금도 이뤄가고 있는 내용을 바탕으로 오늘 "우리 유인원"이 살아가는 세상에 하나의 질문을 던지는 느낌이다. 우리는 호모사피엔스 “알고 있는 있간”, “지적인 인간”, 그러니까 무엇인가를 알고 생각하는 유인원이 아닌 유인원, 사람이니까 말이다.
늘 그렇듯이 똑같은 책이라도 무엇을 보고 어떤 것을 찾을 것인가는 저마다 다를 것이 분명하다. 모두가 비슷하면서도 다른 것을 찾고 느끼는 것이야 말로 호모사피엔스의 또 다른 능력일 것이다.
책 값은 17,500원. 아깝지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