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OOJOOSOO

View Original

[일상] 거울이 있는 카페 풍경

  거울은 앞에 선 사람의 모습을 비춰 줍니다. 나는 거울 앞에서 내 모습을 봅니다. 즐겁기도 하지만 언제부터인가 먹먹한 일이 되어버렸습니다. 거울은 내 얼굴만이 아니라 내 마음을 비춰 주나 봅니다. 나는 거울을 통해 다른 사람의 모습도 봅니다. 거울은 다른 사람의 모습을 안전하게 훔쳐 볼 수 있게 해줍니다. 어떤 여자들은 화장을 하는 손거울로 주변 사람들을 살펴보기도 합니다. 사무실 한 쪽에 걸린 거울로 반대편에 있는 사람을 훔쳐 보기도 합니다.

  또 거울은 바깥을 내다 보는 창문과도 같습니다. 밖을 내다보는 창문이라 말하니 “고디바”를 그린 오래된 그림이 생각납니다. 나신으로 고디바가 말 위에 올라 거리를 지나가는 그림입니다. 그림 한쪽으로는 벽에 난 창으로 고디바를 훔쳐보는 톰이라는 사람의 모습이 보입니다. 톰은 창 뒤에 숨어서 고디바를 훔쳐 봅니다. 누구에게도 결코 들킬리 없을거라 생각했겠죠. 창문 뒤에 숨어서 봤으니까요. 오늘 나는 톰과 같이 창문 뒤에 숨어서 타인의 삶을 엿보려 했습니다. 톰은 집 안에서 창문으로 집 밖에 있는 고디바의 몸을 보려했지만, 나는 길가에서 거울을 통해 같은 곳에 있는 타인의 시간을 엿봤습니다. 그리고 내 자신의 모습도 볼 수 있었습니다.  

  카페의 거리쪽에 있는 벽은 큰 유리로 되어있었습니다. 유럽 어디쯤에 있는 건물의 커다란 창 마냥 고풍스럽습니다. 실은 유럽 어디를 가보진 않았습니다. 그러니 내가 보는 저 유리벽이 진짜 유럽의 고픙스러운 그곳과 비슷한지 아닌지는 모릅니다. 단지 내 머리속에 있는 유럽이 그렇다는 겁니다. 내 세상은 대개 이런 식입니다. 내가 알고 경험한 세상은 지극히 얇고 좁습니다. 내게 세상은 국민학교 미술 시간에 그렸던 그림과 같습니다. 알고 있는 몇 가지를 그린 후 나머지는 상상으로 채워나갑니다. 상상할 수 없는 공간은 파란색이나 노란색으로 대충 채워넣습니다. 지금도 온 세상을 커다란 도화지에 그리라고 한다면 나는 새끼손톱만큼도 되지 않는 작은 부분만 그림을 그릴 수 있을 겁니다. 그조차도 정확하진 않겠죠. 그리곤 나머지 부분은 내가 좋아하는 색들로 채워넣을 겁니다.   

  유리벽과 반대 쪽에 있는 카페 안쪽 벽에는 커다란 거울이 놓여있습니다. 거울은 반대편 유리벽 너머에 있는 거리를 지나가는 사람들의 모습을 비춰줍니다. 나는 유리벽에서 조금 더 떨어진 거리에 놓여진 의자에 앉아서 유리벽과 거울에 비친 사람들을 쳐다 봅니다. 가만히 바라보고 있자니 시간이 흘러가는 것도 잊어버립니다. 내 눈 속으로 유리벽 안에 앉아있는 노인들이 보입니다. 노인들은 바삐 지나가는 사람들을 비춰주고 있는 거울 앞에 앉아서 긴 이야기를 합니다. 주변은 온통 젊은이들고 사람들은 재빠르게 움직입니다. 하지만 노인들은 주변에는 아무도 없는 듯 서로의 눈을 바라보면서 천천히 얘기합니다.

  그림과도 같은 그 모습이 내 눈 속으로 들어와 갖가지 생각을 하게 합니다. 노인들이 무슨 얘기를 하는지 모르지만 그 긴 이야기만큼이나 나도 이런저런 생각을 합니다. 그리고 문득 거울의 한 모퉁이에 비치고 있는 내 모습을 봅니다. 거울 속에는 사람들만이 아니라 내 모습도  있었습니다. 한시간 넘게 노인과 거울을 봤지만 이제서야 내 모습을 봅니다. 하지만 다시금 노인에게로 시선이 옮겨집니다. 내 모습보다는 왠지 노인의 모습이 더 끌립니다. 노인의 모습 속에서 언젠가 보게될 나의 모습을 봐서 그런걸까요. 노인들 뒤로 거울에 비춰진 나의 미래가 보이는 듯 합니다. 

  오랜 시간 자리에 앉아 있었습니다. 이제 거울에 비취던 저 거리로 들어갈 시간입니다. 거울로 보던 사람들처럼 나도 저 거리로 나가야 합니다. 내가 거울을 보며 사람들을 봤듯이 이제는 다른 누군가가 거울 속으로 걸어들어가는 나를 볼 듯 합니다. 나는 거리로 나서며 내일로 걸어갈 겁니다. 아까 보았던 노인들이 걸어갔던 길을 따라 걷게 되겠죠. 그리고 언젠가는 노인들이 앉았던 그 의자에 내가 앉을 수도 있을 겁니다. 그리고 그 때가 되면 또 다른 누군가가 나를 보면서 시간과 사람에 대해 생각할 지 모르겠습니다. 마치 오늘 내가 그러했듯이 말이죠.

  아침이었는데 하루를 바삐 보내고 도시에는 벌써 저녁 어둠이 내리고 있습니다.  참 하루가 빠르게도 지나갑니다. 행복한 햇살이 가득한 즐거운 하루였습니다. 사람들은 바삐 움직이고 생각을 정리하는 사이에 카페에는 어느덧 노인들도 자리를 떠난 채 빈 의자만 남게 되었습니다. 이제는 내가 일어나 걸어 나갈 차례입니다. 


2014.4.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