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교] 회개와 기억
기독교에서 "회개"에 대한 생각은 사람마다 차이가 있습니다. 자신의 잘못에 대한 감정적 슬픔을 강조하기도 하고, 의지적 결단을 중요하게 생각하기도 합니다. 감정적 슬픔이 없으면 회개가 아니라고 생각하기도 하고 다시는 그런 잘못을 범하지 않겠다는 의지적 결단과 고백이 없으면 그 또한 참된 회개가 아니라고 말하기도 합니다. 또 어떤 이들은 회개는 변화된 행동이라고 말합니다. 행동이 변화되지 않으면 참된 회개가 아니라는 것이죠. 각각의 상황의 특수성이 있겠지만 모두가 맞는 이야기입니다.
다만 회개에 있어서 중요한 것이 하나 더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것은 바로 "기억"입니다. 자신의 잘못에 대한 정확한 기억입니다. 사람은 자신의 잘못을 모면하기 위해서 잘못을 인정하고 돌이킬 것을 다짐하지만 그 위기가 지나가면 자신의 잘못을 합리화하거나 위조하거나 혹은 그 자체를 기억에서 지워버립니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은 위기의 순간에는 죄인처럼 고개를 숙이다가 그 때가 지나가면 고개를 뻣뻣이 들고 오히려 자기의 잘못을 정당하다고 말하거나 기억이 나지 않는다고 말합니다.
기독교에서는 세상의 악을 대하는 방법에 있는데 그것은 악은 늘 사람 안에 그리고 제도 안에 도사리고 있다는 것을 알려주는 것이고, 우리 인간이 그 속에서 그 악함 속에 살아왔고 함께 동조했다는 것을 알려주는 것입니다. 좀 더 쉬운 말로, "사람은 죄인이요, 세상은 악하다. 너희도 예전에는 세상 가운데 살며 불법을 저질렀다"같은 표현입니다. 이것은 일종의 기억의 재현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기독교는 악을 기억하고 악한 자를 기억합니다. 그 악함의 대상으로는 그것을 기억하는 우리 자신까지 포함합니다. 악의 본성은 자신을 빛으로 바꾸기 위해 거짓을 말하고 악함 자체를 잊어버리게 하는 것이기 때문에 이러한 기억의 재현이야말로 악을 대하는 근원적인 방법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살아가다 보면 사람의 악함과 세상의 악함 때문에 억울하고 힘든 일을 경험하기도 합니다. 그리고 당장은 그것을 이길 힘이 없어서 슬퍼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악에게 지지 않는 인간의 선함과 미래의 희망을 놓치지 말아야 합니다. 인간은 때로 악마같은 모습으로 어둠 속에 살아가기도 하지만 때로 천사와 같은 밝음으로 빛나기도 하기에 그러합니다. 우리는 우리 속에 있는 희망을 포기하지 말고 그것을 노래하며 찬양해야 합니다. 그리고 역시 우리 속에 있는 악함을 잊지 말고 기억하며 그것을 슬프게 곱씹어야 합니다. 그런 기억이야 말로 우리가 내일을 희망차게 만들어가는 참된 인간애의 기초가 될 것임을 믿기 때문입니다.
그런 점에서 역시 과거의 실패와 잘못된 행동들이 오늘도 나를 괴롭게 하는 것은 그다지 나쁜 일만은 아닌 듯 싶습니다. 나의 잘못을 기억함으로 인해서 마음은 괴롭고 힘들지만 어쩔 수 없이라도 다시금 그런 잘못을 반복하지 않게 선한 양심을 갖게 하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우리의 선한 양심을 일깨어 좀 더 희망적인 내일을 만들어 가게끔 우리를 독려하심을 믿기 때문입니다.
과거를 망각해가는 세상을 보며 텁텁한 마음이 들면서도 슬퍼 회개를 생각하니 결국 내 자신도 그 텁텁한 세상의 한 조각이라는 사실이 더 깊이 느껴집니다. 손가락 끝에 박힌 가시같이 온몸을 아프게 하는 기억들이 떠오릅니다. 감정과 의지의 회개는 끝났지만 다시금 그런 일들이 반복되지 않도록 내 자신에게 주의를 주는 기억의 간섭이 쓰라리면서도 더 간절해지는 그런 밤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