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 땅
이 곳 시골 땅값을 좀 아시는 분이 얘기해줬다. 주택부지는 150만에서 200만원까지, 논은 20만원 정도 한다고 하고 밭은 좀 더 비싸다고 한다. 주변이 개발되면 땅값은 더 올라간다고 한다. 땅을 파는 사람은 주로 노인부부다. 더 이상 농사를 지을 힘이 없기도 하고 계속 땅을 다른 사람들에게 빌려 주기도 뭐해서 땅을 판다. 땅 판 돈은 대개 자녀들에게 돌아간다. 사업이 어려워서 가정 형편이 어려워서 힘들어하는 자녀에게 준다. 집터인 경우는 꽤 비싸게 팔린다. 논 밭은 용도변경이 되지 않아서 집을 지을 수가 없지만 집터는 신축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부모에게 물려받은 집과 집터지만 자식들은 대개 도시에서 사는 경우가 많다. 부모가 살지 않는 시골집을 갖기 있기가 뭐해서 파는 듯 하다. 내 생각에는 어려워도 관리를 잘 하면 나중에 큰 추억과 도움이 되지 않을까 생각도 해봤지만, 세금 문제도 있고 형제간에 재산 분할 문제 등 여러 기타 사유로 어쩔 수 없이 팔게 되는 모양이다.
주변을 돌아보니 시골 땅을 사는 사람은 주로 도시 사람들이다. 주로 도시에서 돈을 번 50대 이상의 사람들이 땅을 사서 집을 멋지게 짓고 산다. 담을 튼튼하게 만들고 큰 개를 키우기도 하고 주택보안 시스템을 만들어 놓기도 한다. 조금 이쁘다 싶은 집들은 대개 외지에서 온 사람들이 지은 집이다. 내가 사는 곳은 아니지만 멀리있는 다른 시골을 가보니 마을 사람들이 외지에서 온 사람들을 보고는 "굴러온 돌이 박힌 돌을 빼낸다"며 달가워 하지 않더라. 그도 그럴 것이 외지 사람들은 마을 회관에 오는 법도 없고 마을 회의에 참여하는 일도 없기 때문이다. 도시 근교로 이사온 이들은 시골에서 전원 생활을 즐기길 원하는 것이지 시골 생활을 원하지는 않기 때문일 것이다.
이른 바 외지인들은 교회도 주로 도시에 있는 큰 교회로 차를 다고 다닌다. 그런 분들이 이해된다. 자신이 속했던 공동체를 떠나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더욱이 교회라는 곳이 단순히 신앙만이 아니라, 살아온 삶이요 추억이 얽힌 곳이기에 이사를 갔다고 해서 떠나기란 쉽지 않다. 더군다나 시골교회의 정겨움이라는 목가적인 그림은 어느 소설이나 그림에서나 나올 법한 이야기다. 도시 문화를 경험한 이들이 시골 교회로 오기란 거의 불가능에 가깝다. 시골에 사는 이들도 도시 교회를 경험하면 오히려 도시 교회로 가려고 하기도 한다. 한번은 다른 먼 마을에서 한 분을 만났는데 마을 분이긴 하지만 외지로 교회를 다니는 분이셨다. 내가 있는 시골교회는 작고 가난해서 힘들지 않냐는 말씀을 하신다. 그래도 당신이 다니는 교회는 작지만 교회 나오는 사람이 천오백명은 되고 돈도 많아서 예배당도 새로 짓고 근처에 쌀도 많이 돌린다고 자랑을 하신다. 시골에서 오래 산 분이지만, 정신과 생활은 도시교회스럽고 도시교회에 더 소속감을 가진 분이었다.
나도 시골에 온지 4년이 되었지만 이 땅에 깊이 융화되지 못한 점에서는 마을 사람들 눈에 여전히 외지인이지 않나 싶다. 여러가지 이유로 활동적인 일보다는 몇년동안은 안으로 단속만 하자는 생각에 조용히 지냈다. 처음에는 집에서 조용한 시골 분위기에 책을 읽고 연구하는 것이 좋았다. 그런데 4년 내내 주변에서 나는 공사 소음으로 집에서 있기보다는 가능하면 가까운 도시 조용한 카페나 도서관에 가서 커피를 시켜놓고 독서와 연구하는 것을 더 좋아하게 되었다. 그편이 훨씬 집중도 잘되고 능률이 오른다. 수도자처럼 예배당 안에 있거나, 아니면 농부처럼 농사를 짓고 마을 사람들과 어울려야 할 듯도 하지만 혼자 생각하며 독서하는 문화를 더 좋아했다. 내가 하는 일을 성공적으로 하기엔 나도 아직 멀은 것은 분명하다. 좀 더 활동적이 되야 하지만 아직은 그게 잘 안된다. 한 10년 후에는 좀 나아질 수 있을까 생각해본다.
나는 사람의 손이 타지 않은 자연이나 사람의 손을 겪으면서도 긴 세월을 지켜낸 오래된 것이 있는 곳을 좋아한다. 성곽이 있거나 궁궐이 있거나 왕릉이 있거나 오래된 사찰이나 교회당이 있는 곳을 좋아한다. 아니면 사람이 거의 없는 그런 뚝 떨어진 외지 또한 좋다. 도시도 아니고 완전한 전원도 아닌 애매모호함은 내겐 여전히 이곳도 저곳도 아닌 불안한 곳일 뿐이다.
주변에도 오랜 정취가 배어있는 곳이 있다. 차를 좀 타고 나가면 융릉과 건릉을 볼 수 있다. 사도세자 부부가 모셔진 곳이 융릉이고 사도세자의 아들인 정조 부부가 모셔진 곳이 건릉이다. 한 번 가봤는데 마음과 머리속에 쌓여있던 답답한 그 무엇들이 다 날아가 버리는 경험을 했다. 오래된 곳에 발을 디딜 때면 내 마음과 몸도 그곳에 연결되는 그 느낌이 좋다. 차갑고도 투명한 깊은 시간의 호수 물에 내 자신을 비춰 보는 느낌이다. 자연과 역사의 오랜 깊음과 기품을 경험하는 기쁨이다. 융건릉에서는 그런 기쁨이 있었다.
하지만 융건릉 또한 차를 타고 얼마를 나가야 볼 수 있다. 내가 선 곳에서는 그 어떤 연결점도 찾지 못했다. 결국 다시금 내가 선 땅으로 눈을 돌린다. 가까운 곳에 도시가 있는 시골이다. 완전한 시골도 아니고 도시는 더더욱 아니다. 완곡하게 말하면 시골에도 속하지 못하고 도시는 갈 수 없는 이방인과 같이 느껴진다. 마치 시골로 들어온 외지인이 이곳의 이방인 것처럼 이 시골 또한 이 넓은 한국 땅에서는 또 다른 이방인이지 않나 싶다. 더욱이 땅에도 사회에도 속하지 못한 채 교회에서 사는 나 또한 이방인 같다.
사람은 이 땅에 살면서 늘 저곳 어딘가를 바라본다. 막상 저 어느곳에 가서 살면 또 이곳이나 또 다른 저곳을 바라보면서 살게 분명한데 말이다. 내가 선 땅에 뿌리를 든든히 내리고 살면 좋으련만 사람맘처럼 되는 것이 아닌바에야 차라리 마음의 뿌리를 하늘에 내리고 사는 편이 낫겠다 싶다. 어느 곳에서나 이방인처럼 호기심을 갖고 모든 것을 바라보면서도 겸손하게 사람들을 대하는 순례자처럼 사는 것이 더 맞을 듯 하다. 어느 땅에 서건 그곳이 시골이든 도시던 아니면 그 어떤 묘한 곳이든 평안하고 기쁜 마음으로 내 자신의 삶에 열정을 다할 수 있는 마음이 되었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