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 눈물
아주 드물지만 왈칵 눈물이 날 때가 있습니다. 생각지도 못한 부분에서 갑자기 감정이 복받쳐서 눈물이 터져 나오는데요, 영화를 볼 때나 아주 가끔 음악을 들을 때나 혹은 책을 읽다가 그러기도 합니다. 다른 때는 기도를 하건, 성경을 읽을 때도 그렇구요, 요즘은 교우들과 얘기를 하다가도 그러기도 합니다.
오늘은 청소를 하다가 그랬습니다. 아침부터 방금 전까지 집안 일을 했는데, 실은 오늘은 나가서 카페에서 놀거나 시간을 보내고 싶었습니다. 왜 그냥 쉬고 싶을 때 그럴 때 있지 않습니까. 내게는 오늘이 그런 날이었죠. 하지만 청소도 며칠 못했고 빨래도 좀 많이 밀려 있어서 그러질 못했습니다. 거실 한 가득 밀린 빨래가 산처럼 쌓여 있었고 집안에는 노란색 송악가루가 이곳저곳 쌓여있었기에 아침부터 밀린 빨래하고 청소하고 이러저런 일을 하다가 보니 결국 반나절이 후딱 지나가 버렸습니다.
바닥을 물걸레로 청소하면서 '오늘은 좀 쉬고 싶었는데. 일이 많네'라고 혼잣말을 했는데, 갑자기 눈물이 왈칵 나더군요. 아주 짧은 순간에 여러가지 생각들이 떠오르면서 그리 되었는데요, 내 자신의 모습도 보이고, 사람들에 대한 생각도 나고 그리고 어머니도 생각이 났기 때문입니다.
나는 이렇게 편안한 삶을 살면서도 오늘 하루 그냥 좀 나가놀지 못한 것때문에 투덜투덜 댔는데, 많은 이들은 그리고 어머니는 한평생 다른 이들을 위해서 살곤 하고, 지금도 자식들을 위해서 노동하면서 당신 자신을 위한 시간을 가져보지 못했다는 것이 생각났습니다.
같은 시대와 시간을 살아간다고 하지만 나는 타인의 시간의 무게에 대해서는 전혀 느끼질 못하는 사람이었습니다. 아니 가장 가까운 가족의 시간도 알지 못하고 살았습니다. 내 시간만이 전부였고 그것만이 삶의 의미였습니다. 어디서 주워들은 것은 있어서인지, 나의 시간의 깊이를 추구하고 주님의 시간의 깊이를 산다고 말하며 살았습니다. 이른바 카이로스의 시간을 산다고 생각했던 거죠. 하지만 나의 시간은 깊이도 없었고 넓이도 없었습니다. 진정한 시간은 없었고 시간에 대한 의식도 없었습니다. 그저 '나'만 있었던 거죠.
청소를 하며, 나의 불평 속에서 내 진짜 모습이 드러났습니다. 지극히 이기적이고 내 자신만을 위하는 그런 어리고 어리석은 진짜 내모습이었습니다. 나쁜 것은 아니었지만 너무나 어린 모습이었습니다. 그런 내 자신의 민낯을 본 것에 깊은 부끄러웠습니다. 대부분 사람들이 아무도 없는 방안에서 혼자 부끄러워하고 민망해 해본적이 한두번은 있을 겁니다. 바로 오늘 내가 그랬습니다.
하지만 그 부끄러움 속에서 나는 시간과 삶의 소중함을 깨달은 듯 합니다. 삶과 시간이 소중했기에 역시 그 시간을 살아온 가까운 사람들의 시간의 무게또한 느껴버렸습니다. 내 눈에서 눈물이 난 것은 그런 부끄러움과 더불어 어머니와 다른 분들에 대한 고마움, 그리고 인생의 헛헛함과 영원함에 대한 그리움을 느껴버린 까닭이었습니다.
어떻게 보면 너무 감정적이었던 같은데 눈물이 멈춘 뒤에도 부끄러움과 소중함과 감사함이 남아있는 것을 보면 단지 눈물만 소모한 감정의 과잉은 아니었나 봅니다. 깨끗해진 거실에 앉아서 창밖을 보니 빨래줄에 걸린 빨래들이 바람에 하늘하늘 나부끼는 것이 이쁘기도 하고 재밌기도 합니다. 날이 좋아서 빨래가 금방 마를 듯 합니다. 이런 날은 조금만 더 부지런 하면 빨래를 두번 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정도입니다.
나는 악하지는 않게 살아왔지만, 나만 생각하며 살아온 걸 생각하면 그렇게 착한 삶은 아니었던 듯 싶습니다. 좀 차갑고 딱딱하게 살아왔습니다. 하지만 뒤늦게 나마 나도 모르게 흐르는 눈물이 나를 조금은 부드럽고 조금은 따스하게 만들어 주는 듯 합니다. 비록 내일이면 또 나만 생각하는 이기적인 유전자가 발동할지 모르겠지만, 그 때가 되면 또 그때의 눈물이 있을거란 생각을 하며, 조금이나마 변해갈 내일을 기대해봅니다.
어느덧 해도 뉘엿뉘엿 저녁을 앞두고 있습니다. 쉬고 싶었던 하루였지만, 놀고 쉬었던 것보다는 더 많은 일을 하고 더 깊은 것을 느껴버린 하루가 된 듯 합니다. 글을 쓰다가 보니 아이가 학교에서 돌아왔습니다. 수박 화채를 만들어 주고 뒷정리를 해줬습니다. 몇달 못보던 후배에게서 카톡이 와서 전화를 걸어 내일 만날 약속도 잡았습니다. 그리고 지금은 어머니에게 전화를 걸려고 번호를 누르고 있습니다.
날 위해 땀과 눈물을 흘려야 했던 분들에게 감사하고 그분들을 기억하는 삶을 살아야겠다는 작은 결심을 해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