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 떠보기
인간관계에서 언제부터인가 안하는 행동들이 있다. 그 중에 하나가 "사람을 떠보는 것"이다.
20대에는 순수해서 열정과 순수함만을 가지고 살았다. 그러다가 사람들이 두얼굴을 가지고 살아간다는 것을 뒤늦게 경험했다. 그런 일로 몇번 어려움을 겪게 되다보니 사람의 본심이라는 것에 주의를 기울이게 되었다. 사람들의 말과 행동을 보이고 들리는 그대로 믿지 않고 그 뒤의 본심과 진심을 파악하곤 했다. 사람을 떠본다는 건 말이나 행동으로 일종의 떡밥을 던져놓고 그 사람의 본심과 뒷이야기를 끄집어 내거나 그것을 알아내는 것이다.
그런데 사람을 떠보는 것은 굉장히 어려운 사회적 기술이기 때문에 어설프게 구사하다가는 오히려 상대방에게 내 저열한 모습만 드러내는 꼴이 된다. 그것은 나같이 사회성이 부족했던 사람이 시전할 수 있는 기술은 아니었다. 하지만 여러 사람들이 하는 모습을 보면서 학습되었다고나 할까, 한두 마디 말로 상대방을 떠보는 습관을 갖게 되었다.
그리고 30대를 거치던 중 알게 되었다. 사람들이 그렇게 진짜 생각을 감추는 것은 대화하는 상대방을 신뢰하지 못하기 때문이라는 것을 말이다. 더하여 그들 또한 떠보는 사람들을 위한 떡밥을 이용해 거꾸로 떠보는 사람을 떠보는 고급 기술을 쓴다는 것도 알았다.
특히 자기가 남보다 더 똑똑하다고 생각하거나 단체에서 일정 수준 이상의 지위를 가진 리더들은 자신이 모임의 구성원이나 사람들을 잘 떠보고 그 결과를 확신하는 경향이 강했다. 하지만 회원들과 세상사람들은 표현을 하지 않아서 그렇지 이미 그런 리더의 수준을 다 파악하고 거기에 맞춰서 행동해 주곤 한다. 리더는 자신을 어부라 생각하고 사람들을 고기라 생각하는데, 현실은 오히려 고기가 낚시꾼을 낚아 키우는 모양과 비슷했다.
그렇게 떠보기로 일색하는 리더들은 오히려 사람들에게 거꾸로 떠보기 당하고, 사람들에게는 진실하지 못한 사람이라는 판단을 받으면서도, 결국 자신들만 그것을 모른 채 살아간다. 더욱이 떠보기 기술을 가진 사람들끼리 서로 모여서, 겉으로는 웃으면서도 뒤로는 쉴새없이 서로를 떠보고 넘겨짚는 그 수고스러운 행동을 하는 불신과 불행의 늪에서 헤어나오질 못한다.
그런 모습을 깨달았을 때 내 자신이 얼마나 부끄웠는지 모른다. 더욱이 나는 그런 눈치와 지혜도 없는 사람인데 마치 그런 사람이나 된 걸로 착각하고 그리 행동했으니 말이다.
이제는 사람을 봐도 잘 모른다. 내가 내 자신도 잘 모르기에 다른 사람에 대한 확신도 없다. 사람들의 말을 안믿지도 않고 믿지도 않는, 믿을 말도 없고 못믿을 없다는, 나도 모를 상태가 되었다. 마치 도화지 안에 연필로 가득 그려넣은 낙서를 모두 지우개로 지운 것과 같은 상태라고나 할까. 지워졌지만 종이가 연필에 눌린 흔적이 남아있는 애매모호한 상태와 비슷하다. 그래도 아직 마음에는 힘주며 눌러쓴 흔적들이 남아있어 조금은 더럽지만, 그래도 어중띤 백지와 같은 여백이 된 느낌이다.
주변을 둘러보니 여러 사람이 있다. 숨길 일도 없고 숨길 마음도 없고 넘겨 짚어야 할 일도 없다. 다행이다. 다만 속 생각과 마음을 열고 진솔하게 얘기할 수 있는 순수한 이들과의 만남이 더욱 그리울 뿐이다. 계산하지 않고 고려하지 않되, 배려하고 진심을 담아낸 얘기를 서슴없이 할 수 있는 사람이 있다는 것은 삶을 살아가는 큰 행복중 하나일 거라는 생각을 한다.
가까이 있는 사람들마저 불신하며 떠봐야하는 관계 뿐이라면 그 얼마나 불행한 삶인가. 하지도 못 할 쓸데없는 잔재주를 뒤늦게나마 깨닫고 그만 둔 어리석은 나에게 작은 격려를 보낸다.
2014.8.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