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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 도깨비풀

풀숲에 들고양이 밥을 뿌려 주고 들어왔다. 의자에 앉으니 허박지가 따끔하다. 덕지덕지 붙은 도깨비풀이 가시를 세워 나를 찌르고 있다. 내 딴에는 현관에서 옷을 깨끗이 털었다 생각했는데 옷의 주름 주름에 단단히 달라붙어 있었나 보다.

어릴 때 산이나 들에서 놀고 들어오면 어머니는 어디서 놀고 왔는지를 신기하게 잘 알아 맞추셨다. 그 때는 몰랐는데 지금 생각해보니 내가 놀던 곳에 있던 것들이 내 몸에 흔적을 남겼던 듯 싶다. 들에서 놀면 들풀이 묻고 녹색 풀빛이 옷에 물든다. 논바닥에서 놀면 신발에 논흙이 옷에는 지푸라기가 묻어 있었을 거고, 들로 나가면 도깨비 풀이, 산으로 가면 나뭇잎이나 잔 나뭇가지 부서진 것들이 몸에 붙어 있었을 거다. 흙장난을 하면 아무리 깨끗이 씻어도 손톱 밑에 흙이 남아있고, 진흙을 갖고 장난치다가 손을 깨끗이 닦고 들어 오면 마른 논바닥처럼 부르텄던 손이 오히려 머드팩을 한 것 마냥 뽀얗게 변해 있었을 거다.

지나온 것들이 싫거나 숨기고 싶어서 이것저것 털고 살지만 어느새 돌아보면 아무리 털어도 도깨비털 몇 개씩은 어딘가에 달라붙어 있다. 옷에 눈에 얼굴에 묻어있다. 누구도 볼 수 없다하지만 내 마음의 주름에 묻어 있다. 보이는 것들은 보이는 것으로 보이지 않는 것은 보이지 않게 말과 표정으로 행동으로 드러난다.

살다보면 실수하고 잘못을 한다. 사람들은 대개 너그러워 서로의 소소한 잘못은 개의치 않는다. 하지만 작은 잘못이 아니라 누군가에게 도깨비같은 짓을 하고 사는 이도 있을 거다. 풀숲을 거닌 것을 도깨비풀이 알고 내게 달라붙듯이 누군가를 모함하거나 사리사욕을 위해 도깨비같은 삶을 살아왔다면 진짜 도깨비가 달라붙어 언젠가는 그 앞에 나타날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내가 아무리 그것을 지우고 털어 버리고 깨끗한 척 하더라도 그것들은 언젠가는 내가 감당할 수 없는 진짜 도깨비가 되어 내 앞에 나타날거다.


옷에 붙어있던 도깨비들을 다 떼어내고 나니 지나온 흔적을 깨끗이 지웠다는 만족감이 든다. 만족감에 두손을 들어 머리를 쓰다듬어 뒤로 넘긴다. 그런데 손가락 끝에 뭔가 걸리는 느낌이 난다. 손을 더듬어 가만히 잡아 당기니 도깨비풀 두개가 나온다. 머리털 속에 숨어 있었나 보다. 작은 풀씨 끝에 달린 작은 뿔이 말없이 가슴을 콕콕 찌르며 나를 교훈한다. ‘숨길 수 없어 숨길 수 없어. 네가 걸어온 길이 언젠가는 너를 찌를거야. 네가 찌른 것들이 언젠가 너를 찌를거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