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런 환상이 보이는 상상을 해봅니다.
눈을 감고 있어도 눈 앞에 장면이 펼쳐지듯 보이는 그런 때요. LED 화면으로 보는 그런 선명함이라기 보다는 조금 시간이 지난 옛날 칼라 영화를 보는 듯 한 그런 느낌의 영상입니다. 색들은 채도가 좀 빠지거나 아니면 색감이 조금 뒤틀려 오히려 청록이나 빨강 노랑들이 더 진하게 표현되는 그런 총천연색의 영상같은 그런 장면이 눈 앞에 펼쳐질 때도 있을 겁니다.
내 방 책상 앞에 앉아 있으면 창문 너머로 흙과 풀과 나무가 보이곤 합니다. 커텐을 치면 밖의 풍경들을 모두 사라지고 캄캄한 방이 됩니다. 그러면 아무리 눈을 부릅떠도 밖의 풍경들은 볼 수가 없습니다. 하지만 어느 때면 내가 원치않는 그런 것들이 보일 수도 있지 않을까 상상해 봅니다.
내 앞에 계신 주님께 침묵하며 기도를 위해 잠시 눈을 감으면 눈 앞에 펼쳐진 세상이 닫히면서 또 다른 세상이 눈에 들어오는 그런 때가 있을 겁니다. 갈색과 이끼가 잘 섞인 수분이 있는 흙이 있습니다. 손을 뻗치면 닿을 듯 싶고 손가락 사이 사이로 흙이 몽글 몽글 잡히면서 부서질 듯 합니다. 그리고 그 흙에서 진하고 어둔 녹색의 너무나도 작게 버섯송이 만한 귀여운 나무들이 무성한 잎을 드러내는 진청색의 그림을 이루고 있습니다. 눈을 감았지만 눈을 떴을 때보다 더욱 실감나게 내 손 앞에 보여지는 그런 장면입니다. 흙의 부드러움과 따스함과 시원함이 함께 느껴질 만큼 가깝게 느껴집니다. 그리고 그 작은 나무들은 점점 커지고 커집니다. 땅도 커지고 점점 점점 커집니다. 눈 앞에 그렇게 흙과 나무들이 풍성함으로 펼쳐집니다. 그저 그것을 보는 것만으로도 기분이 좋고 마음이 새로워집니다.
눈을 뜨지만 머릿 속에서 잊혀지지가 않습니다. 눈으로 보는 세상보다도 더 짙은 그림으로 마음과 머릿속에 남아 움직입니다. 그리고 시도 때도 없이 머릿속에서 나무들과 흙들이 자라납니다. 마음의 빈 구석과 바람이 부는 구멍들은 부드러운 흙과 나무들의 짙은 푸르름으로 채워집니다. 그리고 그 자체만으로 마음이 위로가 되고 분노가 사그라들고 새롭고 부드러운 희망이 생겨납니다.
그런 환상이 보이는 상상을 해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