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의 빛 안에서
우리가
빛을 보리이다”
(시편36:9)

[일상] 이상한 저녁 (개구리II)

이상한 저녁이었다. 이틀 동안 안개처럼 내린 봄비는 흙이며 공기를 습하게 적셔 놓았다. 산 등성이에 걸친 태양에서 쏟아진 햇살들은 산과 들로 가득한 안개에 부딪쳐 잘게 부서졌다. 산은 길게 그림자를 드리워 들녘은 어두웠지만, 사방에 가득한 안개는 마치 스스로 발광하듯 어슴프레 빛을 내며 묘한 분위기를 자아냈다. 이런 느낌을 어떻게 표현해야 할지 모르겠다. 다만 어릴 때 그런 때가 있었다. ‘여긴 지구가 아니야. 지구 비슷한 어느 곳이지’. 자라나서는 현실에 적응하지 못하는 사람처럼 ‘이 모든 것들이 꿈같아’라고 생각했던 것처럼, 늘 다니던 길이 이전과는 전혀 다른 곳처럼 느껴지는 바로 그런 생각이 드는 저녁이었다.  

어슴푸레한 하늘과는 반대로 어두워진 도로 위에는 개구리들이 이곳저곳 올라와 있었다. 어떤 녀석은 기어가고 어떤 녀석은 뛰어다녔다. ‘원래 이때쯤 개구리가 다녔었나?. 난데없이 도로 위로 올라와 앉아있는 개구리들을 보자니 알 수 없는 두려움이 엄습했다. 개구리들은 내가 아는 것보다 모두 커 보였는데, 어떤 것은 이상하리만치 작게 보였다. 자동차 전조등이 개구리들에게 비치자 까만 눈들은 도로 위에서 반짝반짝 빛났다. 산에서 내려왔는지 아니면 논에서 올라왔는지 어디서 왔는지도 모르겠다. 이 저녁에 갑자기 나타난 그들은 도로 위를 오가는 자동차들을 피할 생각도 없이 이곳저곳에서 움직이고 있었다. 낯선 존재들. 개구리들이라니. 아직 추위가 가시지 않은 이 계절에, 이 저녁에 어울리지 않은 낯선 존재다. 이른 새벽잠에서 깨어 마을 뒷길을 걷다가 어둔 숲길 저 앞에서 걸어 나오는  어린아이를 봤을 때의 느낌이다. 무섭고 이질적이다.

숨을 들이켜고 내뱉는 짧은 틈에 수 없이 것들이 떠올랐지만, 사람들을 가득 태우고 달리는 승합차의 운전대를 잡고 있는 나로서는 떠오르는 생각과는 달리 앞에 나타난 장애물들을 피해가야 할지 서야 할지 혹은 그냥 그대로 가야 할지를 결정해야 했다. 눈을 반짝거리며 이곳저곳 움직이고 있는 개구리들을 봤지만 나로는 갑작스레 나타난 이질적인 존재들을 피해갈 방법이 없었다. 차는 개구리들 위로 혹은 사이로 도로를 질주했다. 하나 둘 셋 넷… 오가는 차들이 얼마나 많은 개구리를 위로 지나갔는지 모른다. 한 여름에 차가 빠른 속도로 달리면 차창에는 모기와 풀벌레들이 부딪쳐 죽는다. 그것들을 볼 때는 아무런 감정이 생기지 않았는데 타이어 밑으로 밟혀가는 개구리들에는 속이 메슥거리는 거북함이 느껴졌다.  

  '무엇이 그들을 그 도로에 나와서 자기의 모습을 보이며 죽어가게 만들었을까?'. 하루 이틀 잠시 따뜻해진 날씨에 자기들 세상이 온 것이라 생각해서 나온 것인지, 아니면 잠시 나왔다가 너무 차가워진 날씨에 몸이 얼어버려 달리 어느 곳을 가지 못한 채 그저 도로 위에서 얼어버린 것인지, 아니면 그럴리는 없겠지만 긴 겨울이지만 자신들이 살아있음을 증명하기 위해 죽기를 각오하고 나섰는지, 모르겠다.

겨울도 봄도 아닌 그 이상한 저녁에 도로 위에서 짓밟혀 죽어가는 개구리들을 보면서, 언젠가 지나가던 거리에서 보던 그 무엇인가가 떠오를 것 같았다. 몇 년 동안 애써 세상의 거북함을 몰라라 하며 살아온 내게 개구리들이 나와서 자신들이 살아있음을 보여준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을 했지만, 이 또한 내 마음속에서 무엇인가에 막혀서는 더 이상 아무런 생각도 나지 않았다. 어느덧 차는 드리워진 산그림자를 지나쳐서 아직 햇살이 남아있는 환한 곳으로 움직이고 있었다. 개구리와 빛나는 그들의 눈동자가 떠올랐지만, ‘이건 모두 나 혼자만의 이상한 감정일 뿐이야.’라고 고개를 한두번 흔든 후 다시금 마음을 다잡고 차를 몰았다.

그냥 좀 이상한 저녁이었을 뿐이야라고 혼잣말을 중얼거리며 말이다. 

 

2014.3.14

[일상] 미움의 죽음

[상상] 개구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