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의 빛 안에서
우리가
빛을 보리이다”
(시편36:9)

[일상] 수확

[일상] 수확


미곡처리장은 단순하게 말해서 벼를 쌀로 바꾸는 곳이다. 옛날 말로 방앗간이다. 근처에 있는 미곡처리장은 규모가 커서 한눈에 보기엔 공장같아 보인다. 보통 때는 문이 닫힌 듯 보이지만 추수할 즈음이 되면 눈에 띄게 바빠진다.  

지난 주 추석 전부터 이른 벼의 추수가 시작되었다. 조금 더 지나면 수곡한 벼를 큰 가마니에 가득 실은 차들이 길게 늘어선 풍경이 밤낮으로 며칠동안 펼쳐진다. 인근 지역의 협회 회원들이 모두 저 미곡장으로 몰려든다. 미곡처리장에서 쌀을 처리하는 기간이 정해져있어서 그 안에 처리해야 한다고 한다. 마을에 다른 사제 미곡장도 마을에 하나 있는데 협회에서 운영하는 큰 미곡장을 이용하지 않는 사람들은 그곳을 이용한다. 작은 미곡장도 이즈음부터 바빠지기 시작한다.  

시골에 오니 자연스레 계절에 민감해진다. 도시의 계절은 옷차림에서 알 수 있는데 시골의 계절은 들과 논에서 느껴진다. 도시의 계절은 사람에게 느끼고 시골의 계절은 자연에게서 느낀다. 도시의 묵상은 건물 안으로 들어와 의자에 앉아 이뤄지고, 시골에서의 묵상은 자연을 보며 이뤄진다. 가을이 되면 수확하는 사람들과 수확물을 보며 매년 어설픈 자기성찰을 한다. 하지만 농작물이 작년과 별반 다를 바 없듯이 매년 거치는 성찰이 있음에도 삶은 작년과 별반 다를 바 없어 보인다. 아무리 다짐해도 바뀌지 않는 것을 보니 의지를 가진 사람이라곤 하지만 매년 나이테만 늘어가며 변함없어 보이는 나무같이 나또한 자연의 일부인 듯 하다. 밤나무가 늘 밤을 맺듯이 나는 늘 나같은 열매만 맺는다. 

들을 보니 드문드문 벼를 베어낸 논이 눈에 띈다. 한 때 푸르고 황금빛을 띄었지만 어느새 모두 비워내고 흙바닥을 드러낸 논을 보며, 흙에서 나와 흙으로 돌아간다는 인생의 운명을 씁쓸히 씹어 본다. 비어져만 가는 계절 속에 조금 시원해진 바람결을 타고 삶의 허무함이 가슴에 스며든다. 

고맙게도 허무함은 내 밑바닥을 보게한다. 잊혀졌던 기억을 추억하게 한다. 요즘에는 볼 수 없는 풍경이지만 추수한 빈 논을 즐거워하며 마냥 뛰어놀던 어린 시절이 생각난다. 누군가에겐 비워진 곳이지만 누군가에겐 넉넉히 놀만한 공간이었다. 추억의 끝이 따스하고 신비로운 어린시절이라는 것이 다행이다. 평생의 재산이요 삶이 허락한 소중한 보물이다. 추수한 논에서 뛰어놀던 어린 시절의 추억이 허무함과 여백으로 채워지는 오늘 내 가슴 속에 무엇을 위해 어떤 것에 힘을 쓰며 살아야 할지를 어렴풋하게 가르쳐준다.  

들은 벌써 황금색으로 바뀌었고, 수곡한 벼로 흙바닥을 드러낸 논도 많아 진다. 도시는 여름같지만 시골은 진즉 가을이 시작되었고 마무리 준비를 하고 있다. 들을 보던 눈을 들면 높은 하늘이 들어온다. 고개를 숙이면 내 발끝이 보인다. 계절을 충분히 느끼고 있으니 계절에 파묻혀 헛헛해만 하는 것이 아니라 또다른 계절을 위해 또 다른 씨앗을 뿌리고 자리를 마련해야 한다. 자연으로 와서 자연으로 돌아가는 것이 숨쉬는 것들의 매일반이겠지만, 하늘과 내일을 바라보며 희망을 품는 것은 적어도 내게 주어진 특별함이자 특권이다. 멈춰진 발끝에 걸린 가을의 씁쓸함과 묵상은 다시금 걸어가야 할 감사한 의지로 발을 디디게 한다. 

공허와 절망보다는 얻지 못한 것에 감사를, 얻은 것에 겸허함을 담아내는 은총의 계절을 살고 있다. 

[일상] 도깨비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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