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 그림 일기 몇개
작은 수첩에는 일상의 기록만이 아니라 낙서도 있다. 스쳐지나가는 것들을 가만히 바라보다보면 꽤 신기하고 알지 못했던 부분을 발견하게 된다. 물건을 바라보는 시선을 사람에게 옮겨놓으면 역시 비슷한 결과가 나온다. 알고 있다고 생각했던 것들이 틀린 것이 있고, 못보던 것을 보게 된다. 물건 하나 하나에 얽힌 기억들이 물건을 특별하게 만들어 주듯이, 사람 하나 하나에 얽힌 기억이 그 사람의 의미를 특별하게 한다. 재미있는 것은, 물건과 사람을 관찰할 수록 분명해지는 것은 물건이나 사람이 아니라 바로 내 자신이라는 거다. 나의 무지와 무감각함이 더 드러나게 되고 선입견과 달라진 시선들이 분명해진다. 무엇을 본다는 행위는 결국 내 자신을 드러내는 것과 다를 바가 없다.
20171226 샤프
최근 3년 사이에 변한 것 하나를 들라하면 필기하는 습관이다. 6년 전 쯤에 손목에 무리가 왔는지 갑자기 키보드를 치기도 볼펜을 잡기도 힘들었는데, 만년필을 손에 잡고 손에 힘을 빼고 글씨를 쓰면서부터 통증이 거의 사라졌다.
전에는 샤프를 쥔 손가락이 움푹 들어가고 아플 정도로 힘을 줬는데 이제는 볼펜과 샤프와 연필을 잡을 때도 제법 손에 힘을 주지 않고 글씨를 쓸 수 있다.
연필은 중학교 이후로 샤프는 대학교를 졸업하면서 거의 쓰지 않다가 최근 들어 연필과 샤프를 다시 사용하고 있다.
혼자 있는 방에 흑연이 종이를 스칠 때 나는 사삭거리는 소리는 마음을 차분하게 해준다. 만년필이나 볼펜처럼 진하지 않은 것도 마음에 들고 지우개로 깨끗이 지울 수 있다는 것도 좋다.
‘좀 실수해도 괜찮아 다시 지울 수 있으니까’
실수에 관대해지는 편안함을 준다.
20171225 카페
성탄절 오후를 카페에서 보냈다.
어떤 때는 카페가 교회당보다 더 교회당 같다. 천장은 높아서 머리 위로 하늘이 뚫린 느낌이다. 사람들의 말 소리는 울리지만 거슬리지 않는다. 소리가 없는 것과 많은 소리가 있는 것은 비슷한 느낌이다. 편안한 적막함을 준다. 부분 부분을 밝히는 조명은 스테인글라스 창으로 들어오는 햇빛과도 같다.
하루 일과를 기록하고 들뜬 마음을 가라 앉혔다. 직무 외에 만나는 사람이 없다는 것이 그다지 불편하거나 외로움을 주지는 않는다. 다만 어느 순간에는 몇몇 사람들에 대한 그리움과, ‘이거 꽤 심심한데’라는 생각이 든다. 아메리카노는 투샷으로 했는데 진하기는 하지만 맛이 그리 훌륭하지는 않다.
두어시간을 앉아 이것저것 정리하고 나니 뜨거웠던 커피가 차갑게 식어버렸다. 식어버린 아메리카노가 더 쓰게 느껴진다. 마지막 남은 커피는 마시지 않고 머그잔과 함께 반납하는 곳에 올려 놓는다. 뜨거웠던 마음도 커피도 식었다. 뜨거웠던 계절도 식어버렸고 차가워졌다.
삶과 내 자신에 대해 몇가지 무거운 것들이 느껴진다. 알 수 있지만 확인하고 싶지 않은 것들에 대한 뜨거운 그리움이 차가운 마음과 함께 잔에 담겨 반납 데스크 위에 올려진다. 하루가 마무리 되었다.
20171221 테팔 전기주전자.
야식의 유혹을 참지 못하고 컵라면 물을 붓고 면이 익기를 기다리다가 심심해서 눈 앞의 테팔을 수첩에 옮겨 놓았다. 작년에 전기주전자가 완전 고장이 나서 새로 샀다. 주로 커피 물을 끓일 때 쓰는데 물도 많이 넣을 수 있고 생각보다 빨리 끓고 주전자도 너무 뜨거워지지 않는다. 디자인도 단순하니 마음에 든다.
처음 사서 몇 주 동안은 탁자를 깨끗이 치워 이쁘게 올려 놨는데 어느 때부터인가 오래 전 학교에서 청소할 때 대걸레와 함께 쓰던 양은주전자마냥 대충대충 사용하고 있다. 소중한데 막사용한다. 그래도 저리 방치해 놓아도 여전히 이쁘고 사랑스러운 전기주전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