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정이 요동치고 흥분한 날은 잠이 안오곤 한다. 마치 커피 세잔을 연거푸 마신 듯 감각들이 흥분되어 가라앉을 줄 모른다. 생각은 많아져서 머리는 뜨겁고 마음은 포용 못 할 감정을 억누르느라 멍이 든 듯 욱신 거린다. 저녁 즈음에는 애써 마음을 정리한 듯 했지만 큰 태풍을 잠시 지나쳤다 뿐이지 태풍 다음에 물어오는 큰 바람또한 무시할 수가 없다.
벌써 몇 년 째, 일요일 밤은 늘 그렇다. 완전한 평온에 휩쌓여 잠들기가 어렵다. 마음은 큰 바람에 일렁이며 울렁울렁 거린다. 저 깊은 아래 가라앉아 있다가 감동의 파도 속에서 솟아 올라 나를 괴롭힌 콤플렉스 조각들은 이제 어느 정도 자기 자리를 찾아 아래로 내려간 듯 하다. 하지만 이 난리는 마음 속을 온통 뿌연 진흙과 부유물로 가득채워 탁하게 만들어 버렸다.
경험상 이런 경우에는 확실히 시간이 약이다. 겸손히 혼돈과 공허를 참으며 '빛이 있으라'는 소리가 들릴 때까지 혹은 소리가 들리지 않아도 마음에 "큰 광명'이 드러날 때까지 기다려야 한다. 이런 감정의 혼돈은 이제 그만 익숙해지고 무뎌질만하다. 하지만 '뭔가 이제 되었다'라 생각하면서 안정감을 즐기려면 감정의 태풍은 다시금 나를 방문한다. 별로 반갑지 않다.
물렁거리면서 무거운 이런 시간은 마치 우울을 경험할 때 오는 시공의 무너짐 혹은 녹아짐과 비슷하다. 하지만 비슷할 뿐 그것과는 다르다. 우울함이 내부에서 흘러나오는 전혀 다른 이질적인 시공의 질척임과 녹아버린 세계라면, 이건 그저 물리적으로는 내 피부 안으로만 위치가 제한된 감정이라는 한계에서만 벌어지는 세계의 혼돈이다. 제어할 수 없는 세계 속에 떨어진 것과 제어할 수 없는 것이 마음 속에 있는 것은 전혀 다른 차원의 것이다. 얼마 전에는 이런 두가지 상황이 구분이 되지도 분리가 되지도 않았는데 이제는 분리가 되고 구분이 된다. 무너지는 세계 속에서 내 자신의 세계가 다시금 일어서는 느낌이다. 세상과 나 사이에 있는 감정의 보호막과 완충지대도 나름 건실하게 재정비되었나 보다.
하지만 어두움에도 늘 깨달음은 있듯이 이런 혼돈 속에서도 나의 마음은 한가지 교훈을 붙잡으려고 애쓰고 무엇 하나를 파도에도 휩쌀리지 않는 부표를 만들어 낸다. 그건 커다란 교훈도 지혜도 아니다. 다만 나라는 사람에 대한 지극히 단순한 깨달음과 받아들임이다. 내 잘못이든 다른 이들의 부족함이든 '이런 날도 있구나'. 그리고 이런 날을 벗어나기 위한 방법은 특별히 없음을 다시금 확인한다. 이제까지 그랬던 것처럼 이런 감정과 상태를 괴롭게 곱씹고 바라보면서 나의 바닥과 한계를 뚜렷하게 응시하는 것 뿐이다. 그러면서 마음에는 이런 한계가 좌절이나 자책이 되지 않기를, 오히려 사람 앞에 겸손함과 하나님 앞에 정직함이 되기를 바랄 뿐이다.
살다보니 이런 날이 많았는데 앞으로도 이런 날이 얼마나 많겠는가. 그래도 이리 생각을 정리하다보니 다시금 내일이 그려진다. 내일은 조금더 정리된 마음으로 내 자신의 마음과 생각을 가다듬을 수 있을 것이 분명하다. 여지껏 그랬던 것처럼, 이런 날도 있었으니 내일도 역시 그러하리라는 삶의 경험에 조금은 안심하면서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