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의 빛 안에서
우리가
빛을 보리이다”
(시편36:9)

[종교] 넬라판타지아

거리를 걷다가 종종 마주치는 부담스런 소리가 있습니다.

가게 스피커에서 울려대는 시끄러운 음악소리와 스피커에서 시끄럽게 울려나오는 기독교도의 찬송소리가 그것입니다.

기독교에서는 기독교도에게 전도가 굉장히 중요한 임무라고 가르치기도 하고 열정을 내는 분들이 많습니다. 나 또한 내가 믿는 사랑의 도리에 흠뻑 취해 누군가를 사랑하고 그런 사랑과 구원의 도리를 전했으면 좋겠습니다. 하지만 종종 거리에서 마주치는 찬송과 전도의 소리는 영 불편합니다.

이유는 간단합니다. 그분들이 너무 노래도 못하고 연주도 못하는데다가 시끄럽기까지 해서 입니다. 내 마음이 그 노래의 가사와 열심과 신앙을 생각하기 전에 귀가 짜증을 내기 때문입니다. 나는 아직 믿음이 부족한가 봅니다. 시끄러운 소리로 찬송을 하면 귀가 아프고 짜증이 나서 나도 모르게 귀를 막게 되니까요.

거리에서 찬송으로 전도하는 사람을 여럿 봤지만 아직까지 노래를 잘하는 사람을 본 적은 없습니다. (옛날에 한명 있긴 했었습니다만 너무 옛날이라). 바이브레이션이 너무 심한 아주머니라든지 노래를 정말 못하는 젊은이들이 통기타를 들고 나와서 찬송을 하는데 정말 노래를 못합니다. 더욱이 마이크나 앰프 스피커를 어떻게 사용해야 청중에게 감동을 주는지도 전혀 모르는 듯 합니다. 그냥 소리만 크게 냅니다. 가게 스피커에서 시끄럽게 울려대는 스피커 소리와 용호쌍박을 이룹니다.

그럴 때마다 영화 Mission의 가브리엘의 오보에 연주가 생각납니다. 원래는 연주곡인데 사람들에게는 사라브라이트만이 부른 넬라판타지아라는 곡으로 잘 알려져 있습니다. 어느 라디오 방송에서 소개하기를, 사라브라이트만이 이 곡이 너무 좋아 원작자인 Ennio Morricone에게 사정사정해서(?) 노래를 불렀다는 일화가 있습니다. 위키피디아에서 "넬라판타지아" 소개항목에는 다음 내용이 나옵니다.

"다음 곡은 엔니오 모리코네가 영화 미션을 위해 작곡한 기악곡입니다. 약 3년 전에 제가 모리코네 씨에게 저 곡에 노래할 수 있도록 허락해 달라고 편지를 썼습니다. 하지만, 그는 완강히 거절했습니다만, 저의 간절한 마음을 알 때까지 2개월마다 부탁의 편지를 썼고, 결국 허락해 주었습니다. 그가 그렇게 해주었을 때, 정말로 기뻤습니다. 왜냐하면, 이 곡은 아름다운 노래이니까요.” (사라 브라이트만, 1999년 3월, 《One Night in Eden》콘서트 비디오 녹화 작업 중 그녀가 이 곡을 소개할 때의 말)

영화에서 가브리엘은 오지로 들어갑니다. 여러 이야기들이 전개되지만 거두절미하고, 언어도 문화도 다른 곳으로 들어간 가브리엘은 오보에를 꺼내 연주합니다. 가브리엘의 오보에 소리는 넬라판타지아의 음악같이 장중하지는 않지만 낯선 곳의 끝에 선 가브리엘의 신앙과 삶을 드러내듯이 조용히 밀림을 울립니다.

영화는 제목 Mission 답게 나름 선교적인 방향으로 흘러갑니다. 하지만 모든 영화가 그러하듯이, 대개의 유명한 영화가 그러하듯이 영화는 반전으로 치닫습니다. 이미 알려진 유명한 영화이긴 하지만 아직 못 본 분들을 위해서는 내용은 더 이상 말하지 않으렵니다. 영화는 한없이 은혜롭기도 하면서, 다소 시대적으로 지나간 주제이기도 하지만 오늘 다시 한번 생각해 볼만한 비평적인 내용을 담고 있습니다.

영화의 마지막으로 가면서 '가브리엘의 오보에 소리는 정말 진심이었구나'하는 생각이 듭니다. 그는 자신의 신앙의 도리를 음악으로 잘 표현했고 자신이 전한 신앙의 도리를 끝까지 지키고자 노력합니다. 그리고 영화를 끝까지 보고 났을 때 다시금 생각나는 장면이 바로 이 장면이기도 한데요, 생각난 것은 가브리엘의 오보에 소리가 아니라 꺽여진 오보에였습니다. 연주하다가 빼앗겨 부러진 오보에, 가브리엘의 운명과도 같은. 가브리엘의 오보에 연주가 진실되었던 것은 그에게서 꺽여진 오보에 소리가 났기 때문은 아닌가 생각이 들었습니다.

내가 거리에서 음악으로 전도하는 사람들에게 거부감이 느껴지는 것은 이 부분이었습니다. 나는 거리의 사람들에게 바로 내 자신을 봤던 겁니다. 소리를 낼 줄만 알았지 꺽여진 소리는 낼 줄 모르는 빽빽대기만 하는 그런 소란스런 악기같은 내 모습 말이죠. 실은 나는 거리의 그들을 싫어하는 것이 아니라 내 자신의 진심없고 꺽일 줄 모르는 소란스러움을 싫어했던 것입니다.

한주가 훌쩍 지나가 버렸고 이제 다시금 주말이 돌아왔습니다. 주말은 왜그리 빨리 돌아오는지 모르겠습니다. 보통 사람들에게는 주말이 기다려지겠지만 내게는 조금은 더 긴장이 되는 시간입니다. 준비해야 할 것들이 여러가지가 있겠지만 금요일 밤이 되면 무엇보다도 마음의 준비를 합니다. 어떤 마음 자세로 주말을 맞을까하는 거죠. 대개는 한주간 내내 생각을 하기도 하지만 주로 금요일 밤에 마음이 정리가 되곤 합니다. 이번 주에 드는 마음은 다름 아닌 바로 이 가브리엘의 오보에였습니다.

이번 한 주, 가브리엘의 오보에는 내게 소중한 깨달음을 주었습니다. 낯선 사람들과 시간 속으로 들어가 내가 해야할 것이 무엇인지, 내가 무엇을 연주하고 무엇을 말하고 어떻게 살아야 할 것인지를 생각하게 합니다. 모쪼록 크고 화려한 연주보다는 작지만 진실되게 숨결을 담아내는 그런 소리가 나기를 바랄 뿐입니다. 그리고 가브리엘의 꺽여진 오보에를 기억하면서 그것에 의미를 둔 지금 마음이 적어도 며칠만이라도 변치 않기만을 바랄 뿐입니다.

 

영화 미션의 배경이 된 아마존의 역사에 대해서는 아래 블로그와 책을 참조하면 도움이 될 듯 합니다. 

영화《미션》의 역사적 배경 - 아마존 정복의 역사와 선교사 시대의 종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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