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음이 많은 곳에서야 비로소 고요함을 느끼고, 사람들이 많은 곳에서야 비로소 편안한 혼자를 즐길 수 있다. 소음이 있기에 잡스러운 생각을 정리할 수 있고 사람들이 많기에 그 속에 숨어 들어갈 수 있다. 많은 사람들 속에 있지만 그들과는 관계를 갖지 않은 나만의 생각과 나만의 공간 속에서 편안함을 느낀다. 사람들을 싫어하면서도 사람들이 없는 황량한 사막으로는 가지 못한다. 성공한 사람들을 비웃고 행복하게 사는 보통 사람들에겐 관심이 없다. 책을 펼치면 황량한 인생을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감동받지만 그 사람들은 책장을 벗어나 옆자리에 앉지 못한다.
은근히 열어 놓은 마음의 문은 까탈스러운 미로로 이어진 통로를 거쳐 현관으로 이어진다. 누군가 들어와 자신의 옆자리에 다가와 앉아주길 바랄 뿐이지만 대문 앞에서는 남루한 차림의 사람들이 걸러지고 현관 앞에서는 못생긴 사람이 걸러진다. 누군가 옆자리까지 오기를 바라지만 오는 사람은 없다. 고요함과 적막함이 주는 무거움이 싫어 작은 모니터 앞에서 미지의 영혼을 찾아 낸다. 알 수 없는 글자와 그림에 만족하며 보이지 않고 알 수 없는 부분을 나만의 상상으로 꽤 만족스럽게 채워 넣는다.
가장 완벽한 사람은 알 수 없는 사람이다. 가장 완전한 관계는 함께 있어도 알 수 없는 관계다. 안다는 것은 희열과 기쁨을 주지만, 안다는 것은 껴안아야 하고 책임을 져야 한다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따스한 포옹이 없는 관계는 공허하지만 따스함을 찾기에는 자신감도 없어졌고 모든 것이 너무 귀찮아졌다. 가장 완전한 관계는 모른 것 투성이 사람들 속에서 엿보는 곁눈질이다. 결핍된 영혼이 사는 시대에 누가 서로의 결핍을 손가락질을 할 수 있겠는가. 모니터 뒤 움직이는 사람들은 더 이상 눈에 들어오지 않는다. 가장 완전한 이상형은 작은 모니터 안에 있다. 황량한 세상에서 사람을 찾고 기다리기보다는 이상향이 넘쳐나는 모니터 안을 헤매이는 것이 더 낫다. 수 많은 사람을 담은 작은 모니터를 손 안에 들고 다닐 수 있다는 것은 작은 행복이요, 세상을 잃어버린 이에게 세상이 주는 작은 선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