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년 요맘 때면 자동차 보험을 갱신하곤 한다. 처음에는 100여만원 가까이 들었던 보험료가 어느덧 30만원대로 떨어졌다. 그 동안 접촉사고가 없었던 탓에 보험료가 할인되고 무엇보다 자동차가 연식이 오래되어서 이모야 저모양 자동차 보험가격이 내려간 것이다. 어찌보면 노후된 자동차가 더 위험하니 보험료가 더 많아져야 될거란 생각이 들긴 하지만 아무래도 보험물정 모르는 내 생각일 뿐이고, 보험회사에서 금액을 산정하는 기준은 뭔가 심오한게 있지 않나 생각한다.
중간에 중고로 사긴 했지만 자동차는 어느덧 만 16년을 넘어섰고 이제 20만km를 눈앞에 두고 있다. 처음 살 때에는 이것 15만키로는 타야한다며 고장날 때마다 사소한 것까지 고치곤 했다. 정비업소에서는 대충고쳐 쓰라는 눈치였지만 원인모를 작은 진동과 소리에도 영 불편한 맘이 들어 반드시 고치곤 했다. 그 때마다 이 차 15만키로까지는 타야한다며 잘 고쳐달라고 떼를 쓰곤 했는데, 어느덧 차가 15만키로가 되어서는 이거 20만키로까지는 타야한다며 또 이래저래 요구하며 고치곤 했다.
정비업체는 새 차에는 친절하고 노후된 차에는 그다지 성의를 보이지 않는다. 정비업체에서 아무리 차를 잘 본다하더라도 매일 차를 몰고 다니는 사람보다 차를 더 잘 알지는 못한다. 매일같이 들리는 시동음과 진동들을 몸으로 느끼기에 차의 이상은 누구보다도 운전자 본인이 더 잘 안다. 단지 어디가 어떻게 잘못되었는지를 정확히 모를 뿐이다. 그렇기에 내 차에 어떤 문제가 있는지를 정확히 말해주고 설명해 줘야 한다.
훌륭한 정비사는 운전자의 얘기를 귀담아 듣고 참고하며 자신이 미루어 짐작하는 것들을 더 물어보고, 결국 차의 내부를 열어서 자신이 직접 그 문제들을 확인하곤 한다. 문제는 보통 몇가지가 겹쳐서 일어나는 경우가 많기에 생각외로 돈은 더 들어가게 된다.
반면에 보통 정비사들은 운전자의 이야기를 잘 듣지도 않고 표면적인 문제만을 해결하려고 한다. 그렇기에 한두가지 문제만을 수리하고 얼마 안가 또 다른 문제로 다시금 수리를 하는 일이 벌어진다. 어떤 경우는 대책없이 이것 저것 바꿔가며 문제를 잡아나가는 경우도 있다. 어떤 것이 문제인지 모르니 하나씩 바꿔 나가며 잡아야 한다는 그럴듯한 말을 한다. 처음에는 그 말이 꽤 그럴듯하게 들렸는데 몇몇 정비소들을 만나다 보니 정비사에 따라 전혀 다른 진단과 결과가 나오는것을 경험하고 나서는 정비사의 말을 그대로 믿지 않게 되었다.
그런데 이런 정비사와 정비업소의 문제는 비단 자동차만의 문제는 아니었다. 병원이 그랬다. 같은 질병을 가지고 병원을 찾아가면, 특히 아이가 아플 때 보통 두 병원 혹은 세병원을 돌아다닌 적이 있는데 아이를 대하는 태도와 치료의 방법은 달랐다. 훌륭한 의사는 부모의 말을 참고하면서도 중요한 부분들을 물어보며 아이가 가진 질병의 원인을 추론한다. 게다가 현재 그 지역과 나이에 유행하는 질병에 대해서도 명확한 이해를 갖고 있었다. 결국 몇몇 병원을 다니다가 다른 곳에 비해 더 정확한 진단과 알맞은 처방을 하는 병원을 찾게 되고 그 병원을 가곤 한다.
하지만 더 나가서 이것은 단지 정비업소와 병원만의 문제는 아닐 것이다. 교회와 목사, 국가와 정치인 등 모든 분야에 비슷한 장면들이 겹쳐진다. 한 분야의 전문가라는 사람이 갖추어야 할 덕목과 실력에 대한 중요한 관점을 제공한다. 전문가는 혹은 전문인은 일상적인 언어와 생활을 하는 일반인들의 말을 귀기울여 들어야 한다. 그들이 말하는 것 속에서 진짜 문제가 무엇이고 표면적인 문제는 무엇인지를 찾아내야 한다. 그리고 그런 문제들에 대한 객과적이고 폭넓은 지식을 습득하고 있어야 한다.
허접한 정비사나 의사처럼 주어진 틀에 맞춰 진단하고 처방하는 잘못을 범하지 말아야 한다. 대충 고친 자동차로 운전하다가 큰 사고가 날 뻔한 일이 몇 번 된다. 전문가의 조언과 처방은 일반인의 삶에 위기를 가져올 수도 있고 안전을 가져올 수도 있다. 그렇기에 전문가는 자신이 하는 일에 대한 직업적 소명에 성실해야 한다. 자신의 손이 어떤 결과를 가져올지를 충분히 예상하고 진지하게 임하는 소명의식이 필요하다. 그리고 끊임없이 고객과 세상으로 부터 듣고 배우는 자기계발을 병행해야 한다.
나는 어떠한가! 결국 모든 결론은 내 자신에게로 귀결된다. 나는 진지하지 못한 자세로 대충 고객과 환자를 대하는 정비사나 의사가 아니었는가 생각해본다. 아니면 열정은 있지만 정확한 지식이 없던지, 혹은 고객과 소통하지 못하는 그런 무뚝뚝한 전문인은 아니었는가 돌이켜 본다. 돌이켜 본 내 모습은 그다지 바람직하지 못하다. 고객과의 소통을 힘들어하고 게을러 했으며, 내가 속한 세계와 그리고 사람 자체에 대한 전문적인 지식도 부족했다. 그동안 나를 거쳐간 고객들에게 미안함과 죄책감이 든다.
앞으로는 내가 마치 위대한 선지자나 대단한 영적 지식을 갖고 있는 사람처럼 과대포장하지 않도록 조심해야 하겠다. 그리고 내가 할 수 있는 한에서 최선을 다해 듣고 묻고 할 수 있는 처방을 내리는 일에 집중해야 하겠다. 모든 병을 고치는 명의나 신의 손같은 정비사는 못되지만, 싸구려 사이비 의사나 정비사가 되지는 말아야 하지 않겠는가 말이다. 동네 보건소에서 하듯이 친절히 대해주고 작은 병들을 토닥여주고 큰병은 큰 병원으로 연결해 주는 그런 성실과 정직함과 실력을 갖춘 그런 작은 의사가 되면 더 이상의 바램이 없을 듯 하다.
이제 차는 20만km를 앞두고 있다. 요즘엔 정비소 아저씨에게 다시 말한다. "이 차 25만키로는 아니 30만키로는 타야 해요. 그러니까 작은 거라도 다 고쳐 주셔야 합니다. 작은 문제라고 고치지 않은면 나중에 더 큰 문제가 되쟎아요.".
나도 이제 인생의 20만km를 달려 온 듯 싶다. 혹은 10만km일 수도 있지만, 이제는 내 스스로를 잘 관리하면서 무리하지 않게 지속적인 속도를 내는 것이 중요한 때가 되었다. 가장 중요한 것은 다른 무엇보다 자신을 잘 관리하고 길을 잃어버리지 않는 것. 그리고 언젠가는 엔진이 멎고 폐차가 되겠지만 그 때까지라도 작고 적은 사람들에게나마 그들이 원하고 하나님이 원하는 그 목적지까지 그들을 이동시켜 줄 그런 역할을 잘 감당하고 싶다.
자동차 보험을 갱신하다가, 늘 그렇듯이 엉뚱한 생각에 빠졌다. 어쨋든 자동차 보험을 갱신하면서 자동차를 다시금 생각하듯이, 1년이 저물어 가는 이 때에 다시금 내 자신을 돌아보며 정비하는 시간이 필요한 듯 하다. 내게 남은 시간들을 다시금 먼길을 잘 갈 수 있도록 말이다. 부우우웅.
201411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