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상] 비너스
그 별이 금성인 줄은 몰랐는데 어느날 알게 되었다. 하지만 안 것은 그 때 그 별 뿐이다. 다시금 비슷한 별이 그 옆에 떠올라도 그것이 금성인 줄은 알 수 없었고 알 도리도 없었다. 안다고 했지만 단지 그 때 그 곳에 뜬 별이 금성이었다는 것만 알았다는 말이다. 언제 어느 때고 뜨는 별들 중에서 금성을 찾아 낼 수 있다는 말은 아니다. 하긴 그런게 한두개가 아니다. 안다고는 말했지만 알고 있는 것을 다시 말 할 수가 없다. 그 때 그 별이 금성인것만 안다고 말하는게 내가 말할 수 있는 전부다. 내가 아는 것은 그 때 그 별 뿐이다.
그녀가 왜 비너스인지는 몰랐는데 어느날 알게 되었다. 하지만 안 것은 그 때 그 여자 뿐이다. 어느날 TV를 보다가 알았다. “사랑의 비너스”라는 노랫말과 함께 어떤 여자가 가슴을 두 손으로 받치고 있는 브래지어 광고였다. 그 때 비너스라는 말의 정확한 뜻은 몰랐지만 비너스가 브래지어 이름이 아닌것만은 알았따. 다만 비너스는 저렇게 이쁜 여자가 옷을 벗고 있는 것이구나 하는 정도만 느꼈을 뿐이었다.
그림 속 그녀가 비너스인 줄은 몰랐는데 어느날 알게 되었다. 유명한 그림이라고 하는데 그 여자가 비너스라고 한다. 별로 이쁘지도 않고 몸매도 별로였다. 그런데 그녀가 왜 비너스여야 하는지 이해가 안되었다. 비너스는 사랑인데, 수줍은 듯 가슴을 가리고 서있는 그런 여자인데 조개껍데기 위에 서있는 저 여자가 비너스인지 도통 알 수 없었다. 하지만 다른 그림을 보고는 ‘저 여자는 비너스가 맞아’라고 생각했다. 왜냐하면 예쁘고 매력적이어서다. 하지만 나는 여전히 비너스가 누구인지는 몰랐다.
나중에야 알게 되었다. 비너스의 별명이 포르노라고 한다. 남자들도 신들도 넘어갈 정도로 이쁘게 생겼는데 게다가 몸매도 좋고 더욱이 남자들의 마음을 잡아끄는 마력을 지닌 허리띠도 있다고 들었는데, 그 허리띠를 한번 풀면 넘어오지 않을 남자가 없다고 한다. 그녀 앞에서는 신들도 휘청이고 땅도 휘청이고 하늘도 다 넘어졌다고 한다. 비너스와 하룻밤 자면 인생이 망가져도 좋다고 생각한 신들도 있었다고 한다. 그래서 비너스의 별명이 포르노라고 한다. 비너스를 나타내는 또 다른 이름은 아프로디테와 함께 포르노 아프로디테라고 한다.
그런데 다른 그림들과 이야기속의 비너스를 보니 그녀는 또 다른 모습도 많았다. 비너스는 참 똑똑하면서도 매력적이고 남자신들이 모두 넘어갈 정도로 섹시한 듯 한데, 또 그런것과는 전혀 상관없는 듯 완전히 순결하고 거룩한 처녀같은 신같아 보이기도 했다. 이런 비너스를 알고 보니 밤하늘의 그 별도 그 그림속의 비너스도 원래 비너스에는 어울리지는 않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늘의 별은 너무 이상적이고 그림속의 비너스는 너무 못생겼거나 너무 이쁘고 매력적이기만 했다. 모든 것들을 다 합쳐도 비너스는 비너스가 아니었다. 그러니까 공상을 하는걸거다. 앞에 있는 그것이 그것이 아니니까 나머지 빈 것들을 공상으로 채워나가고 눈 앞에 비너스를 완성시키는 거다. 하지만 그렇게 완성된 비너스는 5분도 채 되기 전에 사라져 버린다. 내가 망상증 환자가 아니어서인지 상상으로 만든 것들의 실체는 그리 오래 생명력을 유지하지 못하고 흩어져 버린다. 상상한 것들은 상상이 끝나면 모두 흩어져 하늘로 올라가 버린다. 어찌보면 이 땅에서 있던 포르노 비너스가 다시금 저기 천상의 비너스로 올라간 걸지도 모른다.
* 조개 위에 서있는 비너스를 나중에 큰 그림으로 봤다. 작은 그림으로 볼 때는 보이지 않던 그녀의 얼굴 표정이 보였다. 표정이 있는 그녀는 사람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