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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 수확

도시의 계절은 옷차림에서 알 수 있는데 시골의 계절은 들과 논에서 느껴진다. 도시의 계절은 사람에게 느끼고 시골의 계절은 자연에게서 느낀다. 도시의 묵상은 건물 안으로 들어와 의자에 앉아 이뤄지고, 시골에서의 묵상은 자연을 보며 이뤄진다. 

기록되지 않은 기억은 불분명하다. 남겨진 것은 그 때의 감정과 이미지뿐이다. 과거의 사건은 지나가지만, 감정과 이미지는 기억 속에서 생명을 부여받고 태어나 살아간다. 기억 안에만 갇혀있는 이 작은 동물은 시간이 갈 수록 점점 자라난다. 

사람들은 바닷가에 가서 모래사장에 누으면 꼭 무엇인가를 그리곤 한다. 잘게 부서진 가루 위에 선을 그어 무엇인가를 쓰거나 그린다.  그저 멍하니 보기만 해도 아름다운 것들 위에 내 머리 속에 있는 풍경과 생각들을 써놓는다. 

내리는 비가 마른풀과 나뭇잎들에 부딪쳐 소리를 낸다. 나도 모르게 입에서 "비가 내린다"라고 중얼거린다. 이 말은 마법의 주문과도 같아서 일단 입에서 말이 풀리면 마음은 이미 내리는 비를 가는 실 삼아 올라가는 거미마냥 어딘지 모를 끝을 향해 올라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