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의 빛 안에서
우리가
빛을 보리이다”
(시편36:9)

[일상] 여행

(이건, 아주 오래 전 얘기입니다)

꽤 한동안 듣지 않던 얘기를 근간에 들었습니다. 해외여행을 가라는 얘기인데요, 다른 나라를 가보면 한국에서만 보던 시야가 얼마나 좁은지 알 수 있다고 합니다. 다른 나라의 발전된 모습이나 자연도 많이 볼 수 있어서 좋다고 합니다. 그래서인지 그런 얘기를 해주시는 분들은 기회가 되는대로 해외여행을 다녀오려한다는 말씀을 하시더군요. 더불어 그런저런 이유로, 내게도 꼭 해외 여행을 가라는 말과 함께, 갔다오면 정말 많이 달라질거란 얘기도 해줍니다.

그런 얘기를 들을 때마다 고개가 끄덕여집니다. 내가 속했던 곳을 떠나서 내가 모르던 세상 속으로 들어가 거닌 다는 것이 얼마나 흥분되고 즐거운 일일지 솔직히 자세히 상상은 가지 않습니다만, 분명히 멋진 경험일겁니다. 나는 여행에서 돌아온 사람들의 눈과 얼굴을 사랑합니다. 그들은 거쳐왔던 그곳을 떠올리며 마치 그곳에 있는 것마냥 숨을 쉬고 눈은 이미 그곳을 바라보며 그곳과 그곳에 있던 감각을 세밀하게 그려냅니다. 여행은 대화 속에서 이야기가 되어 그만의 독특한 여행으로 탄생합니다. 모두가 같은 곳을 갔다오지만 저마다의 세계는 다르고 이야기도 다릅니다. 내게 여행지가 판타지라면 여행에서 돌아온 이들은 그 판타지에서 현실로 나온 신화 속의 주인공과 같습니다. 그래서 내가 아는 사람들이 여행을 다녀오는 것이 마치 내가 다녀온 것처럼 즐겁고 그냥 어린아이마냥 자랑스럽습니다.

그런데 이런 내속을 잘 모르는 분들은 쌩뚱맞게 내게 해외여행에대한 찬사와 여행을 권유를 할 때가 있는데요, 그분들이 느끼는 즐거움과 좋은 것을 함께하자는 의미는 알겠지만 그런 얘기를 들을 때면 기분이 묘해집니다. 그리고 기분이 묘해지는 내 자신에게 왠지 섭섭하고 착잡한 마음이 들곤 합니다.

성경에 보면 여행을 떠난 사람들이 여러명 나옵니다. 아브라함이라는 사람은 신의 영감을 받아 미지의 새로운 땅을 찾아 모험 아닌 모험을 떠납니다. 신의 약속과 희망이 있는 새로운 땅을 찾는 여행이었습니다. 이삭이라는 사람은 아버지인 아브라함이 자신을 죽이려고 한 극단적인 종교적인 행동에 놀라 네게브라는 광야로 도망치듯 여행을 떠났다고도 합니다. 아버지에게 종속된 자기가 아니라, 그저 홀로 있는 자기 자신을 찾고자 하는 여행이었죠. 야곱이라는 사람은 아버지를 속이고 형을 속여서 도망치듯이 고향을 떠나 친척집으로 먼 여행을 합니다. 그리고 긴 시간을 돌아서 자기 집으로 돌아옵니다. 어두운 자신으로부터 떠나서 다시금 참된 자신을 찾아가는 여행이었죠. 요셉이라는 사람은 형들에게 죽을뻔한 위협 속에서 인신매매단에 팔려 고향에서 멀리 떨어진이집트로 끌려갑니다. 요셉은 이집트에서 긴 시간동안 고생을 한 후에 이집트의 중요한 인물로 성공을 합니다. 그는 한 인간으로서의 역경과 고난을 이기고 꿈을 이루는 여행을 했습니다. 

돌이켜 보면 우리 모두는 다 여행가란 생각이듭니다. 어디를 가건 어디에 있건, 한번도 간 적 없던 이 우주공간을 빠른 속도로 항해하는 지구라는 배에 올라타서 처음 만나는 시간을 항해하고 있습니다. 늘 새로운 하루를 만납니다. 오늘 만난 사람은 어제와 비슷하지만 또 달라보입니다. 삶을 통해 이루고 싶은 꿈을 쫓기도 하고, 실수와 잘못으로 원치않는 씁쓸한 길을 가기도 합니다. 모두들 아름다운 여행과 원하는 목적지에 다다르기 희망합니다. 하지만 우리들 모두는 이 여행의 끝도 모르고 아직 어디쯤 왔는지조차 모르는 미숙한 여행가이지 않나 싶습니다. 

여행을 권유받을 때 내 마음이 묘해지고 섭섭해졌던 것은, 삶으로서의 내 여행에 대한 감각과 신비를 잃어버린 까닭이 아닌가 싶었습니다. 삶이라는 이 여행에 충실하다면 그 어떤 다른 여행이야기를 들어도 내 마음과 삶이 깊이 흔들리지는 않을겁니다. 호기심과 기쁨이 있었겠죠. 하지만 나는 그런 여행이야기를 들으면서 내 속에 조그만 공허를 느낄 수 있었습니다. 내 삶에 충실하지도 깊은 신뢰감도 갖지 못한 까닭이었죠. 무엇인가를 느끼고 넓어지기에는 내 삶 자체만으로도 충분하고 싶은데, 그것을 인정받지 못했다는 얄팍한 자존심때문에 그런 마음이 든 듯 합니다. 이만큼 여행을 해왔으면서도 아직도 마음이 미숙한 까닭일 것입니다.

하지만 나도 언젠가는 먼 곳으로 여행을 가길 원합니다. 별이 많이 보이는 곳이나 저녁노을이 멋진, 혹은 고대의 유물들이 바람에 드러나 있는 그런 곳으로 가서 긴 시간 함께 하고픈 마음도 있긴 합니다. 삶의 여행이든 낯선 곳으로의 여행이든 여행은 그 자체만으로도 멋진 일이니까요. 하지만 지금 내게 큰 기쁨을 주는 것은 여전히 여행을 다녀온 사람들의 꿈꾸는 얼굴입니다. 현실에 찌들지 않고 새로운 희망과 즐거움을 간직한 그 얼굴을 본다는 것은 내게 너무나도 소중한 삶의 기쁨입니다. 나도 오늘의 여행을 충실히 경험하면서 언젠가 맞이할 긴 여행을 준비해야 하겠습니다. 그 때까지는 다른 여행자들의 빛나는 얼굴을 보면서 오늘의 나를 응원하려 합니다. 

 

 

* 나중에 모든 것이 끝난 후에 안드로메다로 여행을 가보고 싶긴 합니다. 좀 아스트랄한 마인드이긴 하지만요. 기억에 떠오르는 이름들에게 주어진 삶이라는 여행에, 하나님의 평화가 함께 하길 기도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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