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의 빛 안에서
우리가
빛을 보리이다”
(시편36:9)

[일상] 아이자랑

자녀를 둔 분들을 만나면 대개 자식 자랑이 어느새 대화 주제로 떠오른다. 그런데 나는 내 아들에 대해 크게 자랑할 것이 없다. 아이는 아직도 바늘 시계 보는 법을 잘 모르고 구구단은 1단과 2단 밖에 모른다. 받아쓰기는 빵점을 종종 맞는다. 열심히 뛰긴 하지만 달리기도 꼴찌도 곧잘 하나보다. 하지만 이런 이야기에, 아이가 꼴등한다고 아직도 빵점을 맞는다고 하는 얘기에 다들 웃으며 좋아한다. 일종의 안도감을 갖는 느낌이다.

내 아이는 학교에서 가르쳐 주는 것을 다 소화하지 못한다. 다른 아이들을 둘러보니 학교에서 공부하고 학교 끝나면 학원에 가서 예습 복습하고 집에 와서 또 공부하다가 다시 학교로 가는 아이들도 있다. 모두가 다 열심히 공부하는 분위기다. 이런 상황 속에서 “공부만이 다가 아니야, 성적만이 다가 아니야”를 외치며 아이를 단지 자유롭고 행복하게 키우는 것이 쉽지만은 않다. 가끔 아이에게 좀 더 공부를 시켜야 하는 것이 아닌가 생각하고 아내와 열띤 논쟁을 벌인다. 하지만 결국 많이 떠들고 놀고 웃고 함께 얘기하자는 것으로 결론을 맺는다. 지금은 더 놀고 웃고 자야할 때라 생각해서다. 아이를 가질 때 즈음부터 아이를 세상에 맞춰서 키우기 보다는 아이와 함께 성장하는 것을 목표로 삼았다. 종종 갈등이 있긴 하지만, 이런 과정자체가 아이에게 분명 다른 의미로 성공할 수 있는 기초가 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아이들은 태어날 때 하늘의 별과 같고 태양과도 같았다. 그런데 자라나면서 자연의 찬란한 빛을 잃어버린다. 형광등과 같이 백열등과 같이, 그리곤 컴퓨터 모니터와 스마트폰 화면같이 변해버린다. 그런 삶이 행복하다면 그렇게 살면 좋을 것이다. 어찌보면 나는 아이에게 사회적인 성공을 위한 도움을 줄 수 없기에 한 인간으로 살아갈 수 있는 희망과 용기를 가르쳐 주려고 하는 지도 모른다. 사회적인 성공이 아니라 행복한 삶에 대해 얘기하는 것이 내가 정말 행복한 삶을 중요하게 여겨서 그리 말하는게 아니라, 사회적인 성공에 대해 할말이 없기 때문에 그런 것일 수도 있다. 많은 이들은 사람의 행복은 단지 문학과 동화 속에서만 존재할 뿐, 대부분은 권력과 돈이 최고의 행복을 만들어 준다고 생각한다. 그것은 정말 한국이라는 사회에서 무시할 수 없는 것들이다.

하지만 주변을 둘러보면 우리가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그런 것들이 또한 우리를 얼마나 불행하게 하고 병들게 하는지도 알고 있다. ‘ 이게 전부는 아니야'라고 말한다. 그러나 막상 현실로 돌아서면 모두가 원하는 그것에 아이를 맞추지 않으면 불안해진다. 사회적으로 낙오자가 될 것 같고 실패자가 될 것같다는 불안함에 쫓긴다. 모두가 추구하는 것과는 다른 것을 추구하면서 사는 것이 과연 가능한 것이긴 한건가 내 자신에게 되묻곤 한다. 물론 깊고 오랜 고민 끝에 결국은 다시 처음마음으로 돌아가지만 말이다.

아마 내가 돈이 많고 사회적 지위가 있었다면 이런 고민은 아이의 사회적 생존과 존재 자체에 대한 갈등이 아니라 좀 더 행복한 삶에 생산적인 고민이 되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러한 것이 없는 삶에서 한 인간의 행복을 고려하고 아이의 사회적인 미래까지 생각해야 한다는 것이 인간적인 갈등이자 고민거리가 된다. 내가 감당해야 할 삶이 아니라, 나중에 아이가 감당해야 할 삶이기 때문이다.

그래도, 아직 아이가 자랑스럽다. 열심히 하지 못한 것에 대한 부끄럼도 알고 노력하지 않고 얻은 것이 얼마나 헛된 것인지도 알아가고 있다. 자기가 필요한 것을 얘기하고 화나고 좋은 것도 얘기하고 늘 재잘대고 노는 그 모습이 내게는 꽤나 자랑이다. 아이가 자라도 이런 자랑스런 마음이 늘 그러하기를 바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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